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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건축사·포유건축 대표]아시아문화전당과 나는 답답하다
2017년 08월 09일(수) 00:00
1980년 5월, 나는 고3이었다. 광주 역사현장 안에 있었다. 도청 안에는 머물지 못했지만 도청 밖 금남로, 많은 시민들 속에 더러 있었다. 불타는 방송국은 도로 건너편에서 목격했다. 차량행진과 시민들의 외침, 모든 것을 보진 못했지만 많은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그랬다.

2002년, 광주를 ‘아시아문화수도’로 만들겠다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처음 공약을 할 때도 광주에 있었다. 이후 문화수도를 위한 필요시설인 ‘아시아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 부지선정 작업이 진행되는 시점엔 주변인으로 진행과정을 바라보았다.

옛 전남도청 일원이 문화전당 부지로 결정되었을 때 많은 우려와 기대를 했다. 5월 항쟁의 유적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도심공동화에 대책 없이 떠난 전남도청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다. 문화전당부지 결정에 5월 단체가 함께 참여했다.

문화전당 설계를 위한 프로그램 준비과정에는 경계인으로 있었다. 관련 공청회가 많았다. 광주에 사는 동안 최대의 공공프로젝트가 될 이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했다. 스스로에게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어린이 문화원이다. 여러 프로그램을 가지고 전당 콘텐츠에 무엇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가를 논할 때, 시민들이 어린이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중 어린이문화원이였기에 2순위에 있던 것을 우선순위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찌 되었든 이는 실현되었다.

둘째, 인근 부설주차장 확보의 필요성과 가능 장소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옛 광주여고 부지가 인근 부설주차장이 되어 일부라도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도 당시 제시한 대안에는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나의 일부 역할은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문화전당 프로그램 결정과 부지 활용 범위를 논할 때 옛 전남도청 본관을 활용하고, 별관은 철거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과정에 5월 단체의 누군가도 있었다.

건축과정에서 ‘랜드마크’와 ‘별관 철거’논란이 있을 때, 나는 경계인에서 약간 내부에 있었다. 일반 및 방송 토론회, 인터뷰에 여러 번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획과정, 설계자 선정, 설계안 확정 등 일련의 과정에서 모든 것이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시공과정에서 다시 나왔다.

그 결과는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중요한 시기에 2년여의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물로 남아 있는 별관의 반쪽 모습과 문화전당의 어정쩡한 주 출입구, 민주광장과 도심으로의 부족한 확장성 등 건축가의 눈에는 어색하다. 부자연스럽다. 이때도 5월단체가 핵심이었다.

문화전당이 개관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옛 전남도청 복원’이 지역에 이슈다.

옛 본관에 설치된 ‘518민주평화기념관’은 완성되었으나 국민들에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문을 잠그고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광장을 지날 때 마다 대형 현수막에, 자극적인 빨간 글씨로 유적지 복원을 외치는 것을 본다. 정치권과 행정에서는 ‘원한다면’ 복원한단다.

그렇다면 1980년 5월로 복원인가. 전남도청 사무실로 사용하던 당시로 복원인가. 왜 그런 복원이 필요한가. 복원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지금 남아 있는 유적으로는 부족한가. 복원했을 때 무슨 가치와 의미를 다수의 국민들에게 줄 수 있을까. 그간 지역사회에선 완공될 때 까지 몰랐다는 이야기 인가. 할 때는 몰랐는데, 한 것을 보니 ‘이게 아닌가봐’ 인가. 등등... 답답하다. 난 지금 논쟁의 경계 밖에 있다.

그런데 ‘왜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까?’ 모두가 이에 동조하는데 나만 이상하게도 답답하게 느끼는 것인가. 혹시 집단 무관심에 빠진 것은 아닌가. ‘말해봤자’ 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진 것은 아닌가. 그 많은 지도자나 시민단체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현시점에의 이런 논란이 광주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생산적 논의조차 없음에 깊은 의문을 가져본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물이 고인 것과 같다. 고인 물은 썩는데....

2017년 8월 나는 광주에 산다. 광주의 역사를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부인해서는 더욱더 안 된다. 그러나 일련의 문화전당 탄생과정과 지금의 현상을 보면서 ‘이게 민주인권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현주소인가?’ ‘이게 광주인가?’ 혼돈스럽다. 아시아문화전당과 나는 답답하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하기 마련이다’란 말이 있다. 이는 과거 기억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된다는 것이지, 과거 기억에 함몰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기에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