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대학입시와 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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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대학입시와 학벌주의
2016년 11월 16일(수) 00:00
매년 대학입시철이 다가오면 온 나라가 후끈 달아오른다. 내일이면 수능이 끝나고, 사교육 기관의 대학입시 설명회장에 학생과 학부모가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다.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누굴 탓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 지상주의’가 문제다. 학벌주의란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차별을 받는 사회현상이다. 일단 상위권 대학만 나오면 능력을 따지지 않고 출세가 보장되는 우리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오래전 일이다. 서울의 어느 사립학교에서 5명의 교원을 뽑는데 전국에서 600여 명이 지원했다. 그런데 지방대 출신자의 서류는 뜯지도 않고 그대로 버리고, 명문대 출신 지원자 중에서만 합격자를 발표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으나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러니 꼴찌를 하더라도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닐까. 대기업 사원에서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운동선수의 성적조차도 학벌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향이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학벌이란 어느 특정 시기에 개인이 경험한 하나의 속성에 불과하다. 개인의 지적 수준이나 신체적 능력은 그의 노력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의 차이를 학벌이라는 잣대로 획일화시켜 서열사회를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문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던 시대에는 출신학교가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정보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에는 ‘과거의 학력’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능력’이다. 끊임없이 분화되고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취에 안주하고 자신들만의 인맥으로 배타적인 성을 쌓는 일종의 ‘사회적 고착’ 현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벌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10대 후반에 고착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패자부활전이 없으니 승자나 패자 모두 분발해야 할 필요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학벌주의는 사회를 정체시키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할 기회마저 빼앗아가고 있음이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포스텍의 교육 실험 중에 교수채용 방식을 보면 파격적이다. 전임 교수 절반을 교체할 계획으로 그중 50명의 ‘산학 일체 교수’는 박사학위가 없더라도 연구 실적 등 실력만 보고 뽑겠다고 한다. 교수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순혈주의를 깨고 실용적 산학협력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계의 패러다임도 대학의 간판보다는 실력 위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벌주의를 타파하려면 능력 중심의 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는 개성 있는 각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다양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전문대나 고교 졸업자도 대졸자를 앞지를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한때의 실패가 자산이 될 수 있는 패자 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진 사회가 열린 사회라 할 수 있다. 능력이 없으면서도 이른바 ‘좋은 학교’ 나왔다고 출세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공부는 수많은 재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성적만으로 줄 세우는 구태에서 벗어나 특기·적성으로 여러 줄 세워 적재적소의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이로써 명문대 졸업장이 아니라 적성을 살린 진로선택이 개개인의 행복과 국가발전을 보장한다는 선진 교육관이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개인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공부여서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여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신분제를 공공화해야 한다”는 등의 막말 논란으로 파면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승자독식의 학벌주의는 척결되어야 할 망국병이다. 출신 대학 간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고질병을 고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대학입시제도라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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