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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간속을 걷다<36>1962년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사제 양성 요람서 문화·휴식 요람으로
[신학교 개교] 전국 두번째 … 철학·라틴어반 42명 입학 1969년 사제 서품·1987년 신부 시국선언
[1998년 평생교육원 새출발] 음악 등 매학기 100여개 강좌 1500명 수강
2016년 09월 21일(수) 00:00
광주가톨릭대학이 1998년 나주 남평으로 옮겨가면서 문을 연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은 문화예술의 요람이자,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이렇게 멋진 곳인데 예전엔 왜 몰랐을까.”

교정에 들어서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광주 지하철 쌍촌역에 인접한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이하 교육원)을 방문한 건 7월이 처음이었다. 본관 건물 뒷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수십년 넘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메타세콰이어가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벤치에 앉아 쉬어가는 이들이 보이고, 녹색 잔디가 눈부신 운동장을 빙둘러 난 길을 따라 걷는 이들도 많았다. 고개를 돌리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붉은 벽돌 건물이 정취를 더한다. 북카페 ‘바오로 딸’에 들러 수녀님이 만들어주는 커피 한잔 마시고 나오며 ‘위안의 장소’로 삼아야겠다 생각했다.

취재를 위해 추석 연휴가 끝난 후 다시 교육원을 찾았다. 정문에 이르는 길 양편엔 꽃무릇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교육원 안에도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꽃무릇이 한창이다. 저만치 수녀님이 꽃무릇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분주하다.

교육원은 광주가톨릭대학교였다. 1998년 나주 남평으로 대학이 옮겨가면서 교육원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이 들어섰다. 현재 건물이 완공된 건 1962년이다. 광주가톨릭대학은 서울 가톨릭대학교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문을 연 신학교다. 1960년 헨리 신부가 미국 등에서 부지 마련 모금을 진행, 9만평을 확보하고 연건평 2만 5000평 규모로 학교를 짓기로 결정한다.

신학교 출발은 1961년 금남로 4가 허름한 목조건물이었다. 대건신학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학생 12명이 함께 했고, 1962년 대건신학교로 정식 개교 후 철학반과 라틴어반 42명이 입학했다. 첫 사제 서품은 1969년이었다.

1984년에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학교를 방문했고 1985년에 광주가톨릭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87년에는 교수 신부 16명 전원이 현 시국에 대한 견해를 밝힌 ‘우리의 기도와 선언’을 발표하는 등 사회참여도 활발했다.

학교가 이전하고 교육원이 문을 열면서 이 공간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천주교 신자 뿐 아니라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됐고 다양한 문화 예술 강좌들을 운영하며 지역민에게 ‘문화향기’를 전하고 있다. 오르간 등 음악을 비롯해 미술, 외국어 등 매학기 마다 약 100여개 강좌가 운영되며 1500여명이 수강중이다. 또 곳곳의 산책로와 우거진 나무는 삭막한 도심의 행복한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교육원엔 시선을 붙잡는 곳이 많다. 조규주 교학행정 과장의 안내를 받아 학교를 찬찬히 둘러봤다. 먼저 지금은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본관 입구 바닥부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의 칠품(성직에 오르기까지 거쳐야할 일곱 가지 품계)이 그려진 바닥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겼다.

본관의 신학생 강의실은 지금 문화센터 강의실과 사무실 등으로 사용중이다. 특히 2층 강의실 중 일부는 옛날 나무바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건물의 계단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직원 식당에는 당시 신학생들이 썼던 낡은 의자와 묵직한 탁자가 남아있다.

1971년 문을 연 성당은 소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편히 들어와 잠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갈 수 있는 공간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래스가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성당 앞에는 상설 고해소도 운영중이다.

성당 지하에 자리했던 강당은 리모델링을 거쳐 대건문화관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특히 목포대 이건실 명예교수가 진행하는 ‘클래식 강좌’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매달 한차례 음악영화도 감상(무료)한다.

교육원의 자랑은 ‘음향 도서관’이다. 이교수가 기증한 1만여장의 LP와 CD, 진공관 등 오디오 기기가 갖춰진 공간으로 모차르트 악보 전집 등 클래식 서적도 빼곡하다. 클래식 강좌를 듣는 이를 비롯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방명록을 들춰보니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듣고 간 이, 이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글 등이 보인다.

브레디관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묵었던 방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곳에서는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검은 사제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웃한 본관 지하 공간은 너무도 흥미로웠다.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붉은 벽돌을 비추는 조명이 아름답다. 조과장은 이 공간을 가장 흥미로워하는 이들은 영화 관계자들과 예술가들이라 전했다. 이곳에서는 ‘인사동 스캔들’, ‘포도나무를 베어라’, ‘라디오 데이즈’ 등을 촬영했다.

눈 밝은 예술가들도 이 공간을 탐냈다. 권승찬 작가가 이곳에서 현재 작업을 진행중이고 그 결과물을 늦어도 11월 안에는 전시할 예정이다. 어떤 모습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지 궁금해진다.

정문 쪽에서 올라오면 조형물이 눈에 띈다. 개교 20주년을 맞아 세운 김대건 신부 동상이 남평으로 옮겨진 후 이곳에는 ‘비움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텅빈 세 개의 십자가가 보이고 조각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주교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과 광주의 역사까지 모두 아우른다. 5·18 항쟁, 세월호 희생자 295명을 형상화한 부분에 뭉클해진다.

북동 성당에서 옮겨온 ‘바오로의 딸’은 천주교 관련 책들을 구입할 수 있고 수녀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다. 바로 옆엔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 ‘현갤러리’가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물 뒷편으로 발길을 옮긴다.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진 공간은 얼핏 외국의 공원처럼도 보인다. 각양각색 나무는 이곳의 특징이다. 한꺼번에 나무를 심은 게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신학생들이 직접 묘목을 심고 가꿨다. 옛 구령대쪽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다르다. 하늘로 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는 가을, 하얀 눈이 쌓인 겨울의 운치는 또 다른 모습이란다.

위로가 필요할 때,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울창한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물다 가면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세상 일에 지친 이들에게 정말 ‘휴식’같은 공간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