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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어디 사람 없소?” 디오게네스의 절박한 물음
2016년 09월 12일(월) 00:00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떠오른다. 철학자였지만 디오게네스는 철학을 어려운 개념과 이론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일상적 행동이 곧 철학적 행위였다. 그는 안과 밖이 똑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떳떳했다.

디오게네스의 이런 두려움 없는 태도는 오직 탐욕 없는 삶에서만 얻어지는 자유로움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삶이 ‘지옥’임을 잘 아는 디오게네스는 평생을 집은커녕 낡아빠진 통 속에서 한 벌의 옷과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살았지만, 천하를 호령한 알렉산더 대왕도 그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이런 디오게네스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빛을 발하는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

끝없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온갖 종류의 비리와 부패로 휘청거리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거대한 ‘욕망의 도가니‘를 생각한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왜곡된 욕망의 덩어리들로 넘쳐나는 도가니 말이다. 욕망의 가장 큰 문제는 끝없는 자기 증식에 있다.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 강력한 절대 권력을 욕망하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를 갖지 못해서 불안하다. 그래서 욕망의 계단 위에 이미 발을 디딘 사람은 그 계단을 제 발로 내려오지 못한다. 그러니 범법자가 범법자를 수사하는 웃지 못할 희극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지 않는가! 이런 요지경의 현실은 디오게네스가 들었던 등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아서 도시를 헤매고 다녔다. 아테네 같은 큰 도시에 사람이 없을 리 없지만 오죽했으면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았을까? “어디 사람 없소?”하고 다녔던 그 심정이 우리가 처한 현실 앞에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디오게네스가 찾으려 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살았던 시대가 특별히 더 비도적적이고 부패한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 비하면 오히려 더 나은 정치와 철학이 있었던 시대였다. 철학자 플라톤은 존경받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아테네는 직접 민주정치가 활발한 도시국가였다. 그럼에도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디오게네스가 말하는 사람의 조건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욕망과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다움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며 정직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현명한 사람은 욕망의 실체를 알고 욕망의 지시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욕망의 충족은 디오게네스에게는 부럽기는커녕 역겨운 것이었다.

어느 날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자 디오게네스는 졸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집안은 너무나 깨끗해서 침 뱉을 곳이 당신 얼굴밖에 없구려.”

현재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위한 통로일 뿐이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가는 욕망의 도가니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는 없다. 오직 그 도가니를 통째로 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만이 욕망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의 등불은 바로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 또한 디오게네스가 찾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디오게네스의 등불은 단순히 세상을 비웃고 풍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등불을 든 행동에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책임의식이 깊게 깔려 있다. ‘욕망의 도가니’의 위험을 경고하고 ‘사람’ 없는 세상의 절망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괴짜로 철저하게 ‘비주류’의 삶을 살았지만, 디오게네스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찾는 것은 그 자체로서 희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필요한 단 하나의 이유는 오롯이 더 좋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며,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가 든 대낮의 등불은 지금의 현실이 어둡고 부패했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에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뜻한다.

디오게네스의 등불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두 가지의 문제를 본다. 사람의 의미에 대한 실천적인 성찰과 세상에 대한 용기 있는 관심이다. 이는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으나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오게네스의 등불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비출 등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등불을 자신에게 우선 비춰 보는 것이 떳떳한 삶의 조건이다.

스스로에게 등불을 비출 수 있는 용기에서 사람다움은 시작한다. 그리고 불빛에 드러난 모습이 자신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어디, 사람 없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