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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결국은 문화력이다
2016년 07월 04일(월) 00:00
1997년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 방송되면서 당시 1억5000만 명의 중국 시청자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전혀 다른 문화를 지닌 두 가정의 남녀가 결혼하는 과정에서 쏟아지는 유쾌한 에피소드는 정서적 공감을 느끼게 했다. 동시에 공산주의 중국에서 사라진 가부장적인 대가족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 전통문화의 향수를 던져 주었다.

이것이 최초의 한류 드라마라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안재욱은 최초의 한류스타가 된다. 이 로맨틱한 한국 드라마는 중국 대륙을 강타했다. 그리고 이즈음 중국의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에서 불어온 새로운 물결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류의 탄생이다.

2002년 일본의 중년층을 울린 ‘겨울연가’는 한류를 일본으로 옮겨 가 ‘일본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배용준을 ‘욘사마’로, 최지우를 ‘지우히메’로 만든 이 드라마는 한류가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이후 한류 바람은 중국을 넘어 아시아로 이어졌다. 동남아 국가들은 앞다퉈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K-POP)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현란한 안무를 구사하는 ‘소녀시대’ 춤사위에 아시아 각국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아시아 한류의 성공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서구적 멜로디와 영상에 길들여졌던 아시아인들에게 드라마와 아이돌로 대표되는 초기 한류 콘텐츠는 그들 정서에 맞는 친근함을 제공했다. 다시 말해 ‘문화 코드(culture code)가 잘 맞았던 것이다.

한류의 성공은 소위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한국에 일깨워 줬다. 소프트 파워란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해당 국가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주는, 보이진 않지만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한류 스타가 입는 옷과 액세서리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어와 우리 역사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한국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케이팝·예능·드라마·문학에 이르기까지 한류의 장르는 보다 다양해지고 아시아·미국·중동·유럽·남미 등으로까지 그 범위도 넓어졌다. 이렇게 한류가 진화하면서 이제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내고 있다.

좋은 브랜드 이미지는 높은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된다.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들이 쌓아 온 고급스러운 가치의 이면에는 프랑스를 떠올리게 하는 문화의 힘이 스며 있다. 경제와 문화의 융합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져 더 높은 가치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동남아에서 케이팝이 인기를 얻자 한국의 화장품·의류·휴대전화가 이 지역으로 더 많이 수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제품을 고급스럽게 인식하는 질적 변화로도 이어졌다.

21세기는 바로 이러한 문화의 힘, 즉 문화력(文化力·cultural power)의 시대다. 콘텐츠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문화의 힘이 한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문화력은 그 나라에 얼마나 끌리는지를 측정하는 매력의 척도이고, 그 나라의 상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경제적 효과로 환산된다. 이처럼 우리 문화콘텐츠는 우리가 만드는 상품의 판매와 구매국의 소비 트렌드,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지난 6월 광주에서 개최된 제7차 아셈문화장관회의에서도 ‘문화와 창조경제’라는 이슈를 둘러싸고 문화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 많은 국가들이 창조산업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문화융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혁신 모델을 국정 기조로 삼아 지난 3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각국의 청년들이 새로운 상상력과 도전 정신으로 만들어 낼 ‘글로벌 문화력’이다. “케이팝은 세계의 음(音)을 아시아 식으로 재편해 보편적인 감성을 느끼게 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기 소르망의 말처럼, 고유함과 보편성이 어우러져 만들어 낼 새로운 가치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국가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각국의 공동 노력은 세계 청년들이 언제 어디서나 마음껏 만나 혁신적인 생각을 현실로 발전시키는 공식적 네트워크 협의체로 구체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구촌 모두가 서로가 가진 발전의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진정한 창조문화의 확산을 위해서는 국경을 초월한 연대와 협력이 확대돼야 한다. 문화적 전통과 다양성을 가진 국가들 간 상호협력의 결과는 어느 한 국가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 전체의 문화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석학 이어령 선생이 쓴 칼럼은 문화력의 중요성을 잘 알려준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이미 2006년에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 갈 11개국 가운데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 2025년까지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두 배로 늘 것이며 탁월한 그 기술력과 문화의 역동성은 세계를 매혹시킬 것이다.” 평생을 ‘문화쟁이’로 살아온 한 노학자의 고백처럼, 전환점에선 오늘의 대한민국이 집중해야 될 핵심 키워드는 결국 문화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