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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빨간의자
2016년 05월 18일(수) 00:00
지난 2010년 6월 초 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도 요즘처럼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였다. 주한 독일대사관 초청으로 함부르크, 뮌헨, 베를린 등 3개 도시를 방문했던 기자는 브란덴부르크의 홀로코스트(대학살) 기념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규모와 내용도 놀라웠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5년 히틀러의 집무실이 자리했던 곳에 세워졌다. 설계를 맡은 유대인 출신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잊어서는 안 되는’ 과거를 현재와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무엇보다 방문객이 몸과 마음으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게 특징이다.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유품들을 전시해 놓은 홀로코스트 타워와 커다란 관을 연상시키는 2711개의 콘크리트 비석은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 가운데 바닥에 전시된 이스라엘 현대미술가 메나쉐 카디쉬만의 ‘공백의 기억’은 눈이 아닌 귀로 먼저 느끼게 되는 작품이었다. 입을 벌린 사람 얼굴 형상의 원형 강철 덩어리들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비명 같은 차가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특히 축구장 두 개 크기의 거대한 면적에 세워진 2711개의 비석들은 독일이 세운, 일종의 자기반성적인 추모비다.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로 명명된 이 비석들 사이를 지나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6년전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충격’이 되살아 난건 얼마 전 관람한 영화 ‘사울의 아들’ 때문이었다. 영화는 아우슈비치 시체소각장에서 아들의 시신을 발견한 사체처리반(존더코만도)인 주인공 ‘사울’이 수백 여명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죽음의 현장을 누비는 처절한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아들의 시신을 소각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온전히 수습해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서다. 영화 속 사울이 밟고 지나간 ‘피 묻은 자리’들은 ‘공백의 기억’의 어디쯤인가에 있으리라.

다시 오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5·18의 참상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론 지난 12일부터 광주 지하철 문화전당 옆 5·18 기념 홍보관에서 열리고 있는 ‘빨간 의자 프로젝트’에 마음이 끌린다. 5·18 기념재단과 작가 주홍 씨가 올해 처음으로 기획한 ‘빨간 의자’는 5월 주간을 맞아 매일 5시18분부터 약 30분 동안 누구나 빨간 의자에 앉아 ‘그날’의 아름다운 경험담을 들려주는 자발적인 시민참여 프로젝트다. 아픈 기억도 많지만 공유하고 싶은 훈훈한 이야기들도 많기 때문이다. 무료로 시위 차량에게 기름을 넣어줬던 정유소 아저씨, 목마른 학생들에게 음료수 한 병을 선뜻 내주었던 수퍼 아줌마….

오는 29일까지 이곳을 방문하면 지난 2014년 주홍 씨가 5월 항쟁 당시 미담사례의 주인공들을 만나 인터뷰한 음성과 지역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연주도 만날 수 있다.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건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빨간 의자는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