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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모리미술관의 택시기사
2016년 04월 06일(수) 00:00
일본 도쿄의 번화가 미나토구 롯본기(六本木)에 가면 모리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오피스 빌딩들이 즐비한 곳에 둥지를 튼 미술관은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근사한 별명을 지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초고층빌딩(모리타워) 54층의 53층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접근성에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색다른 입지와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파격적인 발상으로 개관 10여 년 만에 도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모리미술관은 왜 250m의 높은 상공에, 그것도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고 하는 도쿄 심장부에 ‘입주’하게 됐을까. 다름 아닌 쇠락한 구도심을 문화로 되살리는 ‘롯본기 힐스 프로젝트’ 때문이다. 부동산 재벌로 잘 알려진 모리그룹은 1980년 대 말 ‘문화도시의 허브’를 구현할 구심체로 문화·주상·업무·쇼핑의 롯본기 힐스를 추켜들었다.

하지만 모리그룹의 ‘거사’(巨事)는 타이밍을 찾지 못해 한동안 책상 서랍 속에 방치됐다. 일본의 ‘도시계획 특별법’(2002년 제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롯본기 재개발에 필요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데 17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지난 2003년 문을 연 모리미술관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일약 국제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초고층 전망대와 입장권을 묶은 패키지로 250 만여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인 것이다. 특히 직장인들을 겨냥해 매일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야간 개장과 택시기사와 호텔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관 견학이 큰 몫을 했다. 관광객들을 최전선에서 만나는 택시기사와 ‘호텔리어’에게 모리미술관을 알려 도쿄관광코스에 끼어넣도록 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구전(口傳)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2년 전 모리미술관으로 기자를 데려다 준 택시기사는 마치 모리 미술관에서 파견 나온 직원 같았다. 미술관의 역사에서부터 대표적인 프로그램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택시기사 덕분에 모리 미술관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도쿄 시민들에게 모리 미술관이 어떤 존재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온 지인이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건넸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문화전당에 도착하기까지 운전기사는 “(문화전당은) 돈만 축내는 광주의 애물단지”라며 험담(?)을 늘어놓더란다. 지역사정에 어두운 지인은 택시기사의 불평을 듣고 잠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명색이 국립문화시설인데 자부심은커녕 왜 눈엣가시일까….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주변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문화전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려면 콘텐츠 등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지만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도 그에 못지 않게 필요하다.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들인 모리미술관의 힘은 ‘야간 미술관’과 택시기사들을 구전 마케팅으로 활용한 역발상이었다. 생각을 바꾸면 도시가 바뀐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