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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고독이 필요한 시간
2016년 02월 24일(수) 00:00
좋아하는 그림 중에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년 작)이란 작품이 있다. 20세기 미국회화사의 한 획을 그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대표작이다. 모두가 잠든 밤, 뉴욕의 한 카페를 찾은 남녀 한 쌍과 중년신사, 그리고 카페 바텐터의 모습이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색감과 어우러져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속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우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가장이란 무게에 눌려 사는 우리의 수많은 아버지와 오버랩된다. 그래서일까. 낡은 앨범 속 빛바랜 사진처럼 언제 봐도 늘 가슴 한켠이 아릿하다.

지난해에는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드’(일본 드라마)에 꽂혀 열심히 챙겨 봤다. 드라마를 보면서 10여 년 전 미국 연수시절, 일주일에 1∼2회 정도 자발적으로 ‘나홀로 식사’를 즐겼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드라마는 특별한 스토리 라인 대신 주인공이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일종의 ‘먹방’이다. 도쿄에서 중개상을 하는 40대 남자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늘 어중간하게 ‘밥때’를 놓치게 된다. 늦은 점심이나 저녁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주인공은 그러나, 아무 곳에나 들어가 후딱 끼니를 때우지 않고 맛집들을 찾아나선다.

그렇다고 까탈스런 입맛의 소유자는 아니다. 유명한 식당보다는 뒷골목의 소박한 밥집에 들러 평범하지만 특별한 음식을 주문한다. 혼자 음식을 먹으면 식당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괜찮은 곳에 자리를 잡고 ‘한끼’를 먹는 남자의 모습은 처량함과는 거리가 멀다. 혼자 밥 먹는 그의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고독한 미식가’가 화제를 모은 건 ‘혼자 있는 시간’의 역발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근래 서점가를 강타한 키워드 역시 ‘ 홀로 시간 보내기’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고독이 필요한 시간’ ‘나와 잘 지내는 연습’ 등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의 면면은 ‘혼자 있는 시간’의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는 혼자 있는 시간은 많이 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을 잘 보내고 있지 못하는 요즘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들 책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중요한 순간일수록 적극적으로 혼자가 돼야 한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한다” 고 말한다.

그렇다고 혼자만의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멍 때리고’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묵상에 잠기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독한 순간들이 없다면 사람은 내면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종종 ‘고독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오래전 그랬던 것 처럼, 가끔은 나도 ‘고독한 미식가’가 되련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