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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십자가만 십자가는 아니다
옥 영 석
은펜상 2005년 수상자
2015년 02월 25일(수) 00:00
20여년전 저녁이면 빨갛게 불을 켜는 교회의 십자가조명을 하얀색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교회연합회라 할 노회의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 살고 있던 곳은 산위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바로 앞에 있는 교회 십자가가 저녁이면 섬뜩한 빨간 빛으로 베란다 앞에 버티고 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베란다를 쳐다보는 순간마다 섬뜩한 느낌이 든다는 주민들 불평을, 기왕이면 신자인 내가 전달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종교가 없는 이나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밤이면 밖을 내다보기가 무서울 지경이어서 교회 측에 불 켜는 시간을 조정하거나, 하얀색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어 상급기관에 진정인지 민원인지 모를 제안을 했던 것이다.

십자가 색이 빨간 것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웃들에게 민원을 일으키면서까지 빨간 색을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제기한 것이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고 차갑기만 했다.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가 빨간 색이여야만 한다면 모든 십자가를 빨간색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는 하얀 색이거나 원목의 색상을 그대로 살린 것이 대부분이다.

밤이면 십자가에 불을 켜는 이유가 늦은 시각 가난하고 지친 누군가 교회를 쉽게 찾기 위해서라면 응당 누군가는 교회 안에 있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도회지 대부분의 교회는 자물쇠나 무인경보기가 지키고 있다. 전기와 조명이 이용되기 전, 교회지붕에 내건 십자가가 빨간색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어쩌다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볼 때면 블록마다 빛나는 십자가가 천지다. 예배당 안에서만 사랑을 나누고, 신자들끼리만 교류하는 교회는 아무리 많아져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교회의 사명이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라면, 전도나 이웃을 구제하는 첫걸음은 동네에서 만나는 보통사람들과 불특정 다수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니 심야에는 조명을 꺼두거나, 꼭 불을 켜야 한다면 교회안의 십자가처럼 하얀색으로 바꿀 수 있다면 신앙이 없는 이웃들에게도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다. 십자가 조명을 바꾸는 것은 교리의 왜곡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배려이자 복음을 친근하게 전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