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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과 허수아비 춤
이 병 우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교수
2015년 01월 14일(수) 00:00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 춤’을 보면 재벌의 어두운 면을 많이 그리고 있다. 온갖 술수와 불법, 탈법 행위가 전편을 메우고 있다. ‘회장은 큰 기업을 쉽게 물려받았고, 그런 인물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결점들을 고루 지니고 있다. 유전인 듯 돈 욕심이 끝이 없었고, 안하무인이었으며, 논리나 합리성보다는 밀어붙이기를 좋아했다.’ 그런 회장 밑에서 일하는 스탭은 회장 눈에 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오직 개인의 영달뿐이다.

대표적인 애기가 회장이 비자금 문제로 교도소로 끌려갔을 때의 일이다. 담당 임원이 제일 먼저 면회 가서 ‘통곡의 박치기’를 한다.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고 회장 앞에 무릎을 꿇고 특별 면회시간 30분 동안 피토하듯 이 말을 울부짖으며 이마를 바닥에 짓찧어 댔다. 이같은 부하의 충정에 회장은 ‘내 자식보다 낫다. 아니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말한다. ‘그 황송하기 그지없고 성은이 망극하기 이를 데 없는 말로 면죄부 수여인 동시에 재신임’을 받게 된다. 그 임원은 더욱 감격하여 새롭게 박치기를 해댔는데 이름하여 ‘감읍의 박치기’다. 이 박치기 사건 후에 그 사람은 완전 실세로 굳히게 된다.

대한한공 땅콩 회항 사건은 잘 대응했으면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이다. 사태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고 사과의 진정성도 의심받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위기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하늘과 땅차이만큼 달라진다. 사건 이후 전개되는 일들은 국민의 여론보다는 조 전 부사장의 안위에 더 많은 관심을 둔 것으로 비춰졌다.

대한항공은 사건 발생 다음날을 그냥 보내고 2일이 지난 오후 9시가 돼서야 반쪽짜리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인 조 전 부사장의 사과는 없었고 조 전 부사장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이건 사과문이 아니라 옹호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진정이 되지 않자 조양호 회장까지 나서서 기자회견을 통한 사과를 했지만 이 또한 ‘각본’사과문 논란에 휩싸였다.

조 전 부사장이 국토교통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의 장면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위 임원을 포함한 40여명의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나와서 조사 전후 인터뷰를 두고 몇 번의 사전 ‘리허설’을 진행했다. 조 전 부사장이 사용할지 모르니 조사실 옆 여자화장실 청소를 다시 해달라고도 했다. 이같은 행태는 언론에 ‘초호화 호위’와 ‘과잉 충성’으로 보도되어 네티즌들이 ‘대통령 급이네’, ‘갑중의 갑이네’ 하며 꼬집기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대한항공의 한 임원이 직원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불법 로비활동을 하여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 전 부사장에게 수시로 증거인멸 상황 보고했다. 자신의 로비 역량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개인의 잘못에서 시작한 ‘땅콩회항’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이제 대한항공과 국토교통부의 유착 관계, 이른바 ‘땅콩 게이트’로 비화되고 있다.

이번 ‘땅콩 회항’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태를 보면 기업을 자신의 전유물로 여기는 재벌들의 그릇된 인식과 오너 일가에 맹종하는 임직원의 태도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현실이 대한항공뿐이겠는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많은 기업 현장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충성의 박치기’나 ‘눈도장 찍기’는 폐쇄된 사회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21세기의 개방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허수아비 춤은 소설속에서만 존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