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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책방
2014년 12월 03일(수) 00:00
‘영혼의 집’, ‘운명의 딸’로 잘 알려진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그녀는 동네서점 ‘북패시지’(The Book Passage)를 만나기 전까지 낯선 타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어느날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북패시지를 발견하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서점 주인인 일레이 페르로 셀리 부부는 먼 나라에서 온 작가를 이웃으로 맞아 주었고 마음의 위안을 얻은 그녀는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릴 때나 딸을 잃었을 때 미국을 떠나고 싶었지만 ‘정든 책방’을 잃는 게 두려워 생각을 접었다.

최근 서점가에 나온 ‘나의 아름다운 책방’(로날드 라이스 엮음)의 일부분이다. 책은 이사벨 아옌데, 존 그리샴, 척 팔라닉 등 미국의 대표 작가 84명이 써내려간 ‘내 인생의 작은 서점’ 이야기다. 글쓰기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서점과 그곳에서 어떤 위안과 영감을 얻었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이들에게 있어 동네책방은 ‘할머니의 따뜻한 부엌’ 같은 곳이자 ‘늘 설레게 하는 첫사랑’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동네서점들도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래전 상영된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의 소박한 ‘모퉁이 서점’처럼 아마존닷컴, 반즈앤 노블 등 대형서점의 공세에 밀려 하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책방들이 몰락하는 이유중 하나는 온라인 서점이 주도하는 가격 할인경쟁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9년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5000개를 헤아렸던 전국의 서점 수는 지난해 1625곳으로 급감했다. 동네 서점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을 때 정가보다 25∼30% 싸게 받지만 인터넷 서점은 대량 구매 덕분에 훨씬 저렴하게 구입해 가격경쟁력이 앞설 수밖에 없다. 수십 여년 간 광주시민들과 동고동락했던 ‘나라서적’과 ‘삼복서점’ 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시행되고 있는 새 도서정가제는 이런 동네서점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종전에 19%까지 가능하던 도서 할인율을 15%로 줄이는 등 사실상 모든 책에 정가제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도서정가제 시행 첫 날인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광주를 비롯한 전국 중·소형 서점 2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온·오프라인 서점 매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정가제 시행만으로 고객들을 동네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게 출판계의 전망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 나지 않는 한 도서정가제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던 동네서점들을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책 읽는 문화가 먼저 확산되어야 한다. 혹여 한동안 책방에 가 본적이 없다면 오늘 저녁 퇴근길에 잠시 들러 보자.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보면 잊고 지냈던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