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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 어두운 역사 속의 ‘도덕적인 반사경’
강 용 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2014년 12월 01일(월) 00:00
안와르 콩고. 영화 ‘액트 오브 킬링’(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주인공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입니다.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독립한 친사회주의 성향의 수카르노 정권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하르토 장군이 1965년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쿠데타 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반공’의 이름으로 ‘빨갱이 사냥’이 벌어져 적게는 100만 명에서 많게는 250만 명 이상이 학살됩니다. ‘액트 오브 킬링’는 그 학살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루는 재현 다큐멘터리입니다.

안와르 콩고는 대학살을 주도한 암살단의 일원입니다. 처벌받기는커녕 40년이 흐른 지금도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위대한’ 살인의 업적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안와르 콩고와 친구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학살을 다시 그려냅니다.

학살의 주범들, 이 영화 속에서 과거 범행을 부끄러워했을까요? 오히려 자랑스러워합니다. 그 당시 ‘빨갱이’나 ‘중국놈’을 납치해서 고문하다 죽인 사무실에 영화감독을 안내합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때려 죽였는데 피가 난자하고 치우기가 힘들어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철사로 교묘히 죽이는 방법을 자랑하듯 설명합니다.

감독의 카메라는 손자와 대화하는 안와르 콩고를 비춥니다. 손자는 오리새끼를 거칠게 다루다가 그 다리를 부러뜨립니다. 할아버지가 자상하게 타이릅니다. “오리가 아프지 않겠니?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오리에게까지 자상한 안와르 콩고. 그런데 왜 그는 ‘빨갱이’에게 무자비했을까요? 바로 타자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한 개의 조각(ein Stuck, un morceau)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나치(Nazi)들이 유대인들을 지칭하듯.

이 모든 학살과 야만의 집단적 광기는 ‘빨갱이’와 ‘반공’이라는 상투적인 관용구로 합리화됩니다. 집단적 광기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름’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능력이 결여되어 책임 윤리를 실천할 수 없게 만드는 거지요.

안와르 콩고의 얼굴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겹쳐집니다.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고 이근안은 주장합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심문이 안 되면 할 수 없이 강압심문을 하게 된다” 면서 자신의 전기고문, 물고문을 합리화합니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도 합니다. “공산당 잡는 일은 영원한 애국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며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이것은 단지 인도네시아만의 잔인한 현실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제주 4·3사건이나 보도연맹 사건, 광주 5·18,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을 조롱하는 서북청년단 재건위에서 낯익은 모습으로 떠올려지는 우리의 민낯이고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한 안와르는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영화 서두에 안와르가 학살 현장에서 교살을 재연하는 장면을 말미에서 다시 한 번 촬영하는데, 이미 죄책감의 기색이 역력합니다. 감독이 보기에 그는 매우 불편해 했고,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안와르는 인정하지 않고, 대신에 감독에게 “의상을 바꿔 입고 연기를 좀 더 잘했으면 좋은 장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이 학살을 재연하는 장면, 그것이 안와르에게 ‘도덕적인 반사경’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서도 처벌받지 않은 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이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1000회 이상 상영되었고, 인터넷에서 무료로 공개됐습니다.

영화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대학살은 점차 공론화되었고, 언론은 처음으로 과거를 소리 내어 언급하며 그 끔찍한 살인자들이 지금 권력을 휘두르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심도 깊은 화두를 꺼내기 시작했다고 조슈아 감독은 말합니다.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마침내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고요.

어두운 역사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그 시궁창 속으경 수많은 사람들을 밀어 넣었던 시대와 사람들을 기억하고 공론화 하자는 것은, 역으로 그 광기의 시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광기가 엄연하게 실존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 우리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