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과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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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과 김정호
2014년 07월 09일(수) 00:00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음 음 음 음…. ”(김정호의 ‘하얀 나비’ 중에서)

광주출신 가수 김정호(1952∼1985)의 ‘하얀 나비’를 처음 들은 건 70년대 후반 흑백 TV에서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요절 가수들의 생전 모습을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유난히 창백한 표정, 슬픔이 짙게 묻어나는 목소리는 수십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난 2001년 R&B 남성듀오 브라운 아이즈가 미디엄 템포로 리메이크한 ‘하얀 나비’를 듣는 순간 명곡을 망쳐놓은 것(?) 같아 속상해 했던 기억이 있다. 우수에 젖은 김정호와 경쾌한 리듬의 ‘하얀 나비’는 왠지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적 감성을 건드린 브라운 아이즈의 리메이크는 당시 ‘무명가수’였던 김정호를 요즘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기자가 지금도 가끔 듣는 ‘하얀 나비’가 브라운 아이즈의 노래일 만큼 대히트를 쳤다. 지난 5월 KBS 2TV의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가정의 달 특집으로 함께 출연한 가수 휘성 부자가 부른 ‘하얀 나비’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이 나간 직후 인터넷에는 ‘하얀 나비’와 김정호가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할 정도였다.

사실 이 같은 김정호에 대한 관심은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한국 포크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객이자 요절한 싱어송 라이터라는 이유로 종종 김광석(1964∼1996)과 비교되지만 위상은 크게 다르다. 뛰어난 음악성과 가난, 그리고 질병에 시달린 끝에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그럼에도, 김정호가 70년대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비운의 가수라면 김광석은 TV CF나 뮤지컬, 콘서트 등에서 지금도 만날 수 있는 불멸의 아이콘이 됐다.

어디 이뿐인가. 대구 시내 김광석 거리와 서울 대학로의 김광석 부조물에서도 그는 살아 숨쉰다. 지난 2011년 대구시가 지역 출신 김광석을 문화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그가 태어난 방천시장 부근의 둑길 350m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조성한 덕분이다. 기자가 찾은 지난 4월 중순에도 김광석 거리는 전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쳤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종일 김광석 노래만 흘러나오는 이곳에는 조각, 만화, 그림, 일러스트 등으로 태어난 ‘분신’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주말에는 1000여 명의 방문객이 몰리면서 주변 상가들까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도 김정호 노래비 건립 등 재조명 사업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담양가로수사랑 군민연대는 김정호의 담양출신 외조부인 박동실 명창(1897∼1968)의 음악적 핏줄을 이어받은 그를 기리기 위해 노래비·동상 건립, 가요제 개최 등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태어난 광주에서는 김정호를 브랜드로 키우는 데 관심이 없다. 그의 음악과 삶에 스토리를 엮는다면 얼마든지 문화 광주의 자산이 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하얀나비’의 노랫말 처럼 ‘때가 되면 다시 피게 될 날’이 오도록 지혜를 모으자.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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