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in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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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in 광주
2014년 07월 02일(수) 00:00
“그 아이가 천재일지도 모르잖니. 우리처럼 평생을 탄광촌에서 보내게 할 순 없어.”

10여 년 전 국내에서 상영돼 큰 화제를 모았던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년 작)의 대사 일부분이다. 이 영화를 본 독자라면 막내아들의 발레 오디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파업투쟁에서 빠진 아버지와 이를 반대하는 첫째 아들이 나눈 대화를 기억할 것이다. 기자 역시 자식의 미래를 위해 동료들을 배신한 채 탄광으로 걸어 들어가는 광부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탄광촌 출신의 로얄 발레단 무용수 필립 말스덴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뉴캐슬의 작은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발레천재인 소년과 가족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그렸다. 가난한 탄광촌의 11살 소년 빌리는 탄광 파업시위에 열성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증세가 있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권투연습을 위해 체육관을 찾은 빌리는 우연히 발레 수업에 참가하게 되고 자신의 발이 손보다 훨씬 능란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빌리는 발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의 격려로 권투를 그만두고 발레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아버지와 형의 단호한 반대로 빌리는 발레수업을 그만둔다.

그러나 발레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빌리는 성탄절 저녁, 텅빈 체육관에서 격정적인 춤을 춘다. 이때 빌리를 찾으러 체육관에 들른 아버지는 아들의 춤을 목격하게 되고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누구보다 빌리의 열성적인 후원자가 된다. 발레만이 빌리가 탄광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고 믿은 아버지는 아들을 런던 왕립발레스쿨에 보내기 위해 돈을 모은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로얄 발레단 무용수가 된 빌리가 무대위로 뛰어 오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지난 5월 말, 기자가 찾은 런던 웨스트엔드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지난 2007년부터 동명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공연하고 있는 극장은 지은지 100년 이 넘어 낡고 소박했지만 1550개의 좌석은 빈자리 하나 없었다. 지난 8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저녁 펼쳐지는 풍경이다. 런던을 찾는 외국 관광객 1600만 명(2013년 기준)의 20∼30%가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을 관람한다고 하니 그리 놀라일도 아니다.

‘빌리 엘리어트’가 웨스트 엔드의 다른 공연들에 비해 유독 인기가 많은 건 ‘영국의, 영국에 의한 브리티시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캣츠’나 ‘맘마미아’와 같은 영국산 뮤지컬도 많지만 영국을 배경으로, 그것도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다룬 건 ‘빌리 엘리어트’가 유일하다. 영국 북부 지역의 강한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낸 대사는 영국인도 알아 듣기 힘들 정도다.

문화로 먹고 사는 런던의 힘은 탄광촌을 글로벌 콘텐츠로 키워낸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아시아의 문화강자를 꿈꾸는 지금, ‘광주산(産) 빌리 엘리어트’들이 필요한 이유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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