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역차별’을 말하자
신 항 락
이사·논설주간
이사·논설주간
개인이 어떤 지역과 연결될 때 흔히 편견을 경험하게 된다. 전라북도 사람이 어떻고, 광주는, 목포사람은, 광양사람은 어떻고 하는 것은 좋든, 나쁘든 선입견일 뿐이다. 그러나 지역차별로 범위가 커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거기엔 부정적 이미지인 편견이 난무하게 된다.
전라도를 상정해 보자. 적어도 1997년 12월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전라도 사람들은 서울이든, 경상도에서든 사투리를 쓰는 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전라도 ×’이라는 편견이 자격지심을 키운 탓이다. 이 때까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호남사투리는 조폭과 악역의 말투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그 사투리가 귀에 익어가면서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 편견은 비하로, 악의적으로 진화해 나간다. 대표적인 게 ‘홍어’의 등장이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다.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인 ‘일베(일간베스트)’나 ‘오유(오늘의 유머) 등에는 홍어가 곧 전라도란 등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심지어 일베는 게시공간에 5·18 당시 희생된 시신과 계엄군에 포박된 시민들을 ‘배달될 홍어 포장 완료’라는 글을 올려 희생자와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나아가 이제는 전라도를 묶어 종북, 좌빨(좌익 빨갱이)이란 딱지를 붙이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사이버상에 퍼져 있는 전라도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낙인’임에 분명하다.
국기문란사건인 국정원 직원의 댓글을 보면 더욱더 가관이다. 최근 민주당이 발표한 트위터 글을 보면 ‘호남을 호구로 보는 문재인과 안철수’, ‘문 후보는 확실히 종북’, ‘대선 후보 기호 1번 대한민국, 기호 2번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했다니 기호 2번 문 후보에게 90%의 지지를 보낸 전라도 사람들은 뼈도 없는, 빨갱이들인가. ‘홍어 종자들, 씨족을 멸해야 한다’는 등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구차하다.
지역 비하는 누가 뭐래도 정치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비롯된 호남 비하가 대선판을 달구면서 ‘민주당=호남 좌빨’로 전이시켜 국가정보원이 직원을 동원하고,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이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다는 건 ‘막가자’는 짓이다.
지금, 전라도 사람들은 우울하다. 호남권 인구가 지난 5월 처음으로 충청권에 추월 당하면서 영·호남이 이젠 ‘영·충’이 될 판이다. 유권자 수도 지난 9월 말로 역전돼 호남정치의 위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충청권에선 노골적으로 현재 30석인 호남의 국회의원 수를 인구와 비례해 25석인 충청도에 그만큼 더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남은 인구의 역외 유출도 모자라 올해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숫자가 신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마저 발생했다. 전북도 예외가 아니다. 호남이 ‘아껴둔 땅’이 아니라 ‘버려진 땅’일 뿐이다. 문제는 이게 위기의 전조라는 데 있다.
사람이 많아야 지역이 활성화되고, 사람이 몰리려면 기업군(群)이 고루 지역에 산재해야 한다. 여수시의 석유화학단지나 광양시의 제철소가 대거 사람들을 빨아들인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광주·전남에 여수와 광양을 제외하곤 변변한 기업이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삼성전자 광주공장, 현대삼호중공업, 워크아웃 중인 금호타이어가 고작이다. 조선업의 불황으로 대불공단은 냉기가 감돌고, 지역의 ‘효자산업’이었던 건설업마저 초토화된 지 오래다.
이 모두는 역대 정권의 지역 차별과 역차별이 주된 요인이다.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쓸만한 기업 하나 내려보내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삼성자동차를 부산에 유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 이후 호남은 인사든, 예산이든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난 8개월을 보면 미래는 더 암담해진다. 이번 권력기관장 인사와 내년도 대통령 공약사업 예산만 보더라도 특정지역 독식과 홀대는 확연하다.
이제 호남차별, 그 차별을 줄기차게 제기하자. 흔히 지역감정이니, 지역갈등이니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감정과 갈등은 대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하다. 기득권자의 시각에서 둔갑한 용어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호남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고 한 저변도 차별에 있다. 경상도에서 눈물 운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차별이니, 소외니, 푸대접이니 하는 말 자체를 퇴행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태껏 달라진 것도, 더 이상 빼앗길 것도, 당할 일도 없다. 당당히 차별을 말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야 속앓이라도 면하지 않겠는가.
/hlshin@kwangju.co.kr
전라도를 상정해 보자. 적어도 1997년 12월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전라도 사람들은 서울이든, 경상도에서든 사투리를 쓰는 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전라도 ×’이라는 편견이 자격지심을 키운 탓이다. 이 때까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호남사투리는 조폭과 악역의 말투였다.
국기문란사건인 국정원 직원의 댓글을 보면 더욱더 가관이다. 최근 민주당이 발표한 트위터 글을 보면 ‘호남을 호구로 보는 문재인과 안철수’, ‘문 후보는 확실히 종북’, ‘대선 후보 기호 1번 대한민국, 기호 2번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했다니 기호 2번 문 후보에게 90%의 지지를 보낸 전라도 사람들은 뼈도 없는, 빨갱이들인가. ‘홍어 종자들, 씨족을 멸해야 한다’는 등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구차하다.
지역 비하는 누가 뭐래도 정치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비롯된 호남 비하가 대선판을 달구면서 ‘민주당=호남 좌빨’로 전이시켜 국가정보원이 직원을 동원하고,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이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다는 건 ‘막가자’는 짓이다.
지금, 전라도 사람들은 우울하다. 호남권 인구가 지난 5월 처음으로 충청권에 추월 당하면서 영·호남이 이젠 ‘영·충’이 될 판이다. 유권자 수도 지난 9월 말로 역전돼 호남정치의 위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충청권에선 노골적으로 현재 30석인 호남의 국회의원 수를 인구와 비례해 25석인 충청도에 그만큼 더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남은 인구의 역외 유출도 모자라 올해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숫자가 신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마저 발생했다. 전북도 예외가 아니다. 호남이 ‘아껴둔 땅’이 아니라 ‘버려진 땅’일 뿐이다. 문제는 이게 위기의 전조라는 데 있다.
사람이 많아야 지역이 활성화되고, 사람이 몰리려면 기업군(群)이 고루 지역에 산재해야 한다. 여수시의 석유화학단지나 광양시의 제철소가 대거 사람들을 빨아들인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광주·전남에 여수와 광양을 제외하곤 변변한 기업이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삼성전자 광주공장, 현대삼호중공업, 워크아웃 중인 금호타이어가 고작이다. 조선업의 불황으로 대불공단은 냉기가 감돌고, 지역의 ‘효자산업’이었던 건설업마저 초토화된 지 오래다.
이 모두는 역대 정권의 지역 차별과 역차별이 주된 요인이다.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쓸만한 기업 하나 내려보내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삼성자동차를 부산에 유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 이후 호남은 인사든, 예산이든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난 8개월을 보면 미래는 더 암담해진다. 이번 권력기관장 인사와 내년도 대통령 공약사업 예산만 보더라도 특정지역 독식과 홀대는 확연하다.
이제 호남차별, 그 차별을 줄기차게 제기하자. 흔히 지역감정이니, 지역갈등이니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감정과 갈등은 대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하다. 기득권자의 시각에서 둔갑한 용어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호남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고 한 저변도 차별에 있다. 경상도에서 눈물 운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차별이니, 소외니, 푸대접이니 하는 말 자체를 퇴행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태껏 달라진 것도, 더 이상 빼앗길 것도, 당할 일도 없다. 당당히 차별을 말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야 속앓이라도 면하지 않겠는가.
/hlshi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