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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에 빌어야 할 소원 하나
2011년 02월 16일(수) 00:00
엊그제 새해를 맞은 것 같은데 내일이면 보름이다. 예전 같으면 부럼에 귀밝이 술을 준비하며 흥겨워할 때이지만 구제역이 퍼져 나가면서 세시풍속마저 바꿔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축시장이 폐쇄되고 5일장이 문을 닫았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가족과 친지들 방문마저 께름칙하게 하더니 대보름맞이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구제역이 휩쓸고 있는 경상, 충청, 경기도뿐 아니라 제주 들불축제, 광주 고싸움놀이 등도 취소되어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정육점을 비롯한 도소매업이나 해당지역의 음식숙박업이 위축되고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으니 서비스업 생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공동체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은 이기적이 되어간다. 자신은 소를 키우지도 않고 부모가 시골에 살지도 않으며 축제에서 덕볼 수 있는 업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는 이도 있다. 흥겨운 주말 나들이 길. 구제역방역 초소 앞에서 소독제를 뿌리면 멀쩡한 차에 무슨 짓이냐며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단다.

순간적인 짜증을 못 이겨 한 말이겠지만 누군들 명절을 가족과 보내고 싶지 않고, 엄동설한을 길 위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들은 외신이 전하는 이집트 시위 정도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구제역방제에 얼마가 쓰여지고, 퇴근 길 소주안주로 삼는 삼겹살이 시나브로 수입산으로 바뀌어지고 있다면 표정이 달라질까?

구제역과 AI의 폐해는 소고기와 닭고기 가격의 인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돼지와 오리가 먹는 사료, 가축분뇨를 활용한 비료업, 볏짚, 왕겨, 톱밥거래가 끊기고, 항생제, 영양제 등의 동물의약품, 살코기 등을 가공하는 업체가 2차적으로 타격을 받고 곱창·순댓국집이 개점휴업에 이른다. 학교에서는 우유급식이 어려워지고 원유를 가공해야만 하는 버터와 각종 유제품, 제과·제빵업, 관련유통업도 피해를 면키 어렵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매몰지 침출수가 유출되고 처리불능 상태에 빠진 가축 분뇨가 버려져 수돗물마저 마시지 못하게 되어야만 남의 일이 아니다 싶을까?

우리는 이미 종사하는 직업이 다르고 주거지역이 떨어져 있더라도 원하든 원치 않던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억만리 이집트의 정변이 별 상관없어 보이는 우리 증권가를 술렁이게 하듯 작금의 구제역 파동은 실질소득의 하락을 부르고 가계경제를 불안케 하는 내 발등의 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밀리는 차 행렬은 몇 분 후면 뚫리고 분사되는 소독약은 차체를 부식시키지도 않는다.

보름달을 보며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안녕만을 기원할 게 아니라, 힘들어하는 농업인과 방역종사자들을 순간이나마 위로하고, 구제역과 AI종식을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경건히 기도할 일이다.

/옥영석 농협중앙회 차장·‘05년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