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수잔 보일’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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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수잔 보일’을 꿈꾸자
2010년 01월 11일(월) 00:00
지난해 4월 영국의 한 신인발굴 TV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출연자 대기실. 젊은 출연자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다른 출연자들이 TV에 좀 더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분장을 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프로그램 리포터가 ‘튀는’ 이 여성에게 다가가 이름을 묻자 “올해 47살인 수잔 보일”이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이어 그녀는 “지금껏 남자친구와 데이트는 물론 키스 조차 한 적도 없다. 직업은 지금 찾고 있는 중”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 무대를 위해)얼마동안 연습했느냐는 질문에 “12살 때부터”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그녀가 무대에 등장했다.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방청객과 3명의 심사위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펑퍼짐한 몸매는 그렇다 치고 부스스한 머리는 TV출연자로서 성의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까칠하기로 소문난 심사위원 사이먼이 거만한 표정으로 나이를 물었다. 재차 나이를 물어본 것은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잔 보일은 “47살”이라고 발랄하게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비웃는 듯 술렁거리자 “나이는 단지 나의 일부분”이라며 뚱뚱한 엉덩이를 흔들었다. 보통 출연자들 같으면 주눅이 들건만 그녀는 질문이 이어질수록 더 당당해졌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는 “일레인 페이지(영국의 전설적인 오페라가수) 처럼 되는 것”이라고 답해 방청석의 야유를 받았다.

더 이상 수잔 보일을 ‘놀리는 게’ 멋쩍어지자 사이먼은 큐사인을 던졌다. 두손을 모은 채 그녀가 청아한 목소리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의 첫 소절을 부르자 방청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여성 심사위원 아만다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1절이 끝나기 전에 방청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떠나는 수잔 보일을 심사위원 피어스가 불러 세웠다. “3년간 심사를 했지만 오늘 같은 감동은 처음이었다”며 “우리의 질문에 마음을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방송이 나간 후 그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녀의 오디션 동영상이 인터넷 유튜브 사이트를 통해 소개되면서 최근까지 약 1억2천만 명이 조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중순 발매된 그녀의 데뷔앨범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영국과 미국의 팝시장을 석권하며 3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전 세계가 수잔 보일에 열광한 것은 단지 그녀의 빼어난 가창력 때문만은 아니다. 외모로만 평가한 심사위원들의 편견에 맞서 주눅들지 않고 노래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녀의 당당함은 수많은 ‘루저’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무엇보다 언젠가 무대에 설 순간을 꿈꾸며 12살 때부터 ‘연습’해 온 그녀의 집념은 희망을 잃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경인년 새해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되살려 소중하게 간직해나가자. 오늘 저녁엔 수잔 보일의 앨범을 사 가지고 퇴근해야 겠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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