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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기적을 낳고
2008년 03월 02일(일) 18:45
지난해 말 ‘메이드 인 할리우드’로는 저예산(제작비 280억원)임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낸 영화가 있다. 미국판 ‘엄마 찾아 삼만리’인 ‘어거스트 러쉬’다. ‘나는 전설이다’ ‘내셔널 트레져’ 등 블록버스터들과의 대결에서 관객 200여만명을 동원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못해 진부하다. 태어나자마자 외할아버지의 거짓말로 고아원에 보내진 주인공 에반(11)은 천재 음악소년이다. 바람소리, 풀잎이 스치는 소리, 심지어 도시의 소음조차 그에겐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주된다. 처음 만져보는 기타도 그의 손끝에선 어깨를 절로 들썩거리게 하는 경쾌한 선율을 토해낸다.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아빠와 유명 첼리스트 엄마의 피를 물려 받은 덕이다. 음악이 언젠가 아빠와 엄마에게 전해져 자신을 찾게 될 거라고 믿는 소년은 부모와의 재회를 꿈꾸며 고아원측의 입양 제의도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부모를 찾기 위해 고아원을 탈출, 뉴욕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소년은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길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다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에반은 마침내 부모의 품에 안기는 기적을 이룬다.
그저 그런, 신파조의 영화가 200만명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데에는 음악의 힘이 컸다. 영화는 고아원에서부터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이르기까지 부모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고단한 여정을 클래식과 록이 결합된 선율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관객들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음악의 놀라운 마법에 푹 빠졌다.
음악이 이뤄낸 기적은 영화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모스크바는 한 미국청년의 피아노 연주에 전율했다.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한 23살의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은 소련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당대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신들린 듯한 연주에 매료됐다. 이 사건은 미국문화를 ‘퇴폐적 부르주아의 산물’로 경시해왔던 당시 소련인들에게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26일 동평양 대극장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반 클라이번의 신드롬’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이번의 연주가 꽁꽁 얼어 붙은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녹였던 것 처럼 뉴욕 필의 ‘파리의 미국인’ ‘신세계 교향곡’ 연주는 평양시민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이번 공연이 당장 핵문제와 북·미 관계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했을 것”이라는 뉴욕필의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미셀 킴의 확신은 음악이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을 함축한 말이다. 이처럼 음악은 언어와 국경, 이데올로기의 벽을 뛰어넘는 마법을 지닌다. 동토(凍土)를 적신 뉴욕필의 선율이 어떤 기적으로 이어질지 기다려진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