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10’ 고영삼의 후회] "메달로 먹고 살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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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10’ 고영삼의 후회] "메달로 먹고 살기 힘들어"
2006년 10월 29일(일) 18:58
‘전국체전 9연패, 전국체전 10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전 복싱 국가대표 고영삼(37·광주시 북구 문흥동)씨. 그는 최근 뒤늦은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체육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20년 이상 운동만 해오다 다시 공부를 하려니 적응하기 쉽진 않지만, 부인 이수진(34)씨와 아들 태양(9), 딸 하늘(8)을 생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헤비급 복싱계에서 적수가 없었던 고씨가 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을까? 그는 국가대표(1992∼98)와 광주시 대표(1989∼2004)를 지내며 광주시에 10개의 금메달을 안겼고, 1993년 동아시안게임 금메달·1994년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많은 메달을 조국에 바쳤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망가진 몸’과 ‘생활고’ 뿐이다. 은퇴 후 광주시의 외면도 더욱 힘들게 했다. 지난 1993년 호남대를 졸업한 그는 동구청에 입단했지만, 95년 예산 부족으로 팀이 해체되면서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는 마땅히 갈 실업팀이 없자 군 체육부대(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엔 기간제 교사 생활을 전전했다. 1998년∼2004년엔 광주시 체육회 소속으로 전국체전에 광주시 대표로 뛰었다.
처음 대우는 연봉 1천800만원 정도로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월 급여 없이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딸 경우 보너스를 지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3개·은메달 2개·동메달 1개를 광주에 안겼다.
광주시는 그를 전국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정식 교사 자리와 새로 생길 시 산하 공사 취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체전 후에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결국 그는 2004년 글러브를 벗고 복싱계에서 은퇴했다. 그 후 1년여 동안 1t짜리 화물차로 과일장사를 하기도 했고, 공사장 막일도 했다.

/이승배기자 lsb54@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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