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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고
서생과 상인 |2019. 07.08

고려 성종 때 압록강 동쪽의 영토에 설치한 6개의 주(州)를 ‘강동 6주’라고 한다.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은 서희(942~998)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획득한 영토다. 당시 고려는 오랑캐인 거란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내어 주고 평화조약을 맺자는 현실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서희는 거란의 의도가 고려와 송나라와…

구탕과 견탕 |2019. 07.05

어릴 적 여름철이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개고기를 사다가 구탕(狗湯)을 끓여 주셨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여름철 몸에 좋다며 구탕을 권하시는 어머니 성화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무슨 음식이냐고 여쭈면 아버지는 그저 구탕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구탕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오리탕과 맛이 비슷해 별다른 거부감 없이 한 그릇을 비워내곤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

체 게바라 |2019. 07.04

“어떻게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극장 문을 나서다 노년의 부부가 나눈 대화를 들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한 인간에게 저런 삶을 살게 만든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책과 사진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부군에 총살당하는 모습을 맞닥뜨릴 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게릴라전을 …

메타랜드 입장료 |2019. 07.03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사라질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됐다. 이곳 담양~순창 간 국도 24호선 8.5㎞ 구간에 3~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이 심어진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명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겨울철이면 차량 미끄러짐 사고로 사망자가 자주 발생하는 악명 높은 …

66년 만의 악수 |2019. 07.02

1972년 2월 21일,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중공’(中共)으로 불리던 적대 국가를 방문한다. 그는 출발 전 “이것은 평화를 위한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북경에 도착한 닉슨은 영빈관에 여장을 푼 지 세 시간 반 만에 모택동 사저를 방문, 한 시간 가량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지도자는 역사적인 악수를 나눈 후 ‘진지하고 솔직한 논의’…

부유세 |2019. 07.01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자신들에게 부유세(wealth tax)를 부과하라고 미국 대선 주자들에게 최근 공식 제안했다.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스 등 미국 전체 1%의 부자 중에서도 상위 …

철도 |2019. 06.28

“기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는 회오리바람 같다.” 1876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기차 여행을 한 김기수의 승차 소감이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뒤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발전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기록한 ‘일동기유’(日東記遊)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의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모두 따라서 구…

아파트와 양파 |2019. 06.27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그의 관심사는 온통 아파트다. 그에게 수천만 원을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이 ‘돈놀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업무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수준이고, 분양 정보를 건네주는 공인중개사들의 문자나 건설사 모델하우스 개소 뉴스만 바라본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상품 개발, 기술 혁신, 설비 투자 등은 뒤로 하고 땅에 눈독을 들인다. 지난해…

코리안 드림 |2019. 06.26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현재 84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생산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소비를 하는 한편 고국의 가족에 돈을 부치기도 한다. 이민정책연구원에서 낸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산·소비 활동으로 발생한 경제효과는 86조 7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외국인…

각성과 헌신 |2019. 06.25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출마 준비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도전한다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출마 러시는 규모 면에서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석 비서관에서 말단 행정관까지 적게는 30여 명, 많게는 40여 명에 육박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 청와대 …

‘예송논쟁’ 데자뷰 |2019. 06.24

조선의 18대 왕이었던 현종의 실록에는 예송논쟁(禮訟論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효종 사후 인조의 계비(繼妃)인 조대비의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벌였던 예법 논쟁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예송논쟁은 왕이 죽었을 때, 왕의 생모 또는 계모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어머니보다 장남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경우 …

열 살 된 오만원권 |2019. 06.21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대학 은사는 학생들에게 때때로 화폐와 박물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한 나라를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지폐를 보거나 박물관에 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이 귀에 꽂혀 외국 여행을 할 때면 그 나라의 화폐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인물이 화폐의 주인공인지를 보면 그…

책 나누기 |2019. 06.20

“책을 좋아해 많이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많지요. 이사할 때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도 하구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집안을 어지럽히는 주범 중 하나가 ‘책’인 경우가 많을 터다. 책장과 책상을 넘어 이곳저곳 자리를 차지한 책들은 책 주인을 제외한 다른 가족에게는 그저 애물단지일지도 모른다. 이삿짐센터 …

안마 독점권 |2019. 06.19

선진국들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증장애인 돌보미 제도’를 비롯한 장애인 지원 제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직업을 갖거나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제도는 아직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사회 활동 측면에서 보면 500년 전인 조선시대의 정책이 현대보다…

어르신들의 자서전 |2019. 06.18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자면 책 몇 권은 될 것이다.” 흔히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얘기다. 해방 전이나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전쟁 등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런 자신의 발자취를 글로 정리하면 개인의 나이테이자 나라의 역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출간된 해남 출신 한준식 어르신의 ‘여든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