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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고
미얀마 비가(悲歌) |2021. 03.12

2019년 11월 20일.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 광주일보는 1면 머리기사 자리에 네 장의 사진을 올렸다.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을 담은 사진과 2019년 홍콩 경찰의 폭력 장면을 담은 사진을 나란히 편집한 것이다. 두 도시에서 일어난 광경은 39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당시에도 홍콩 시민들은 광…

당신의 서체 |2021. 03.11

책 선물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꼭 그의 마음에 든다는 보장이 없고, 상대의 취향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가끔은 상대방의 완벽한 취향은 아닐지라도 한 번쯤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선물하거나 권할 때가 있다. 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유지원과 물리학자 김상욱이 함께 쓴 ‘뉴턴의 아틀리에’가 바로 그런 책…

‘미라클 모닝’ |2021. 03.10

대학생인 딸은 요즘 아침 5시30분에 일어난다. 가벼운 체조와 명상을 하고 카카오톡 ‘단톡방’(단체로 대화를 나누는 공간)에 기상을 알리는 인증샷을 보낸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는 영어 공부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이후 생긴 변화로 3주째 이어지고 있는 ‘루틴’이다. 딸이 속한 단톡방의 참가자는 10명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아…

‘반려 나무’ |2021. 03.09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130번지에 자리한 금사정(錦沙亭)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515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500여 년을 헤아리는 이 나무는 아름드리 밑둥에서 굵은 줄기가 갈라져 나와 반구형 모양새를 이뤘다. 나무의 유래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암(靜菴) 조광조를 중심으로…

쭉정이는 가라 |2021. 03.08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권 잠룡들에 대한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연달아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구도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한국정치의 중심인 호남에서도 잠재적 대선후보들을 지지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최근 1강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는 이재명 경기 도지사의 경우, 다양한 형태의 지지 모임이 지역 내에…

전지벽(田地癖) |2021. 03.04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기는 정부를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 조선시대에도 땅 투기를 다스리고 서민들의 집 걱정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국정 과제였다. 성종실록에는 성종 12년(1481년) 1월 “재상들이 서로 다퉈 두 채씩 집을 짓기 때문에 서민들은 성 안에 살 수 없다”며 임금이 대신들을 질책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관리들은 집을 여러 채 소유했을 뿐만 아…

불균형 정책 |2021. 03.04

동양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는 일본이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모방하기 시작한 일본은 한반도를 통해 대륙 진출을 꿈꿨다. 이를 위해 일제는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철도를 자신들이 직접 건설하는 데 엄청난 공력을 기울였다. 1892년 경부철도에 대해 비밀 측량을 한 일제는 1894년 8월 20일 체결한 한일잠정합동조관의 첫 번째 항에 경부·경의 철도 …

버마 |2021. 03.03

‘미얀마’는 우리에게 ‘버마’라는 국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 사건 영향 때문이다. 그해 10월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함께 버마 수도 랭군 아웅산 국립묘지 참배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한데 전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폭발로 인해 장관 등 15명이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버마 정부는 북…

정치권의 소금 |2021. 03.02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정의당이 오는 23일 신임 당 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 광주 출신 강은미 원내대표는 지난주 전국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지난 한 달간 우리가 경험한 고통은 한국 사회가 뼈아프게 반성했어야 할 상처’라며 ‘정의당은 아픔만큼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사실상 첫 …

‘학폭 미투’ |2021. 02.26

“여자 선수들은 사흘만 풀어놓아도 엉덩이에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법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배구 팀에 금메달을 안긴 다이마쓰 히로부미 감독이 했던 망언이다. “죽을힘을 다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그는 선수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문제는 훈련 과정에서 구타와 욕설은 기본이었다는 점이다. 심지…

부자들의 기부 |2021. 02.25

한때 홍콩영화가 극장가를 주름잡던 시대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애정하는’ 배우 한 명쯤 마음에 품고 있던 때다. ‘사대천황’으로 불렸던 곽부성·여명·유덕화·장학우를 비롯해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떠나 버린 장국영, 그리고 우수 어린 눈빛으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던 양조위가 대표적이다. 장만옥과 왕조현·임청하·왕정문을 좋아하는 남성 팬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

‘짬바’와 ‘짬밥’ |2021. 02.24

어느 50대 직장인이 사무실에서 겪은 이야기다. 부장인 그는 어느날 20대 여직원이 “오~ 짬바 좀 나오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됐다. 짬밥이라고 알아들은 그는 “에이~ 내가 이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당연히 짬밥이 있지”라고 의기양양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웃으면서 “짬밥이 아니고 짬바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신조어라는 것을 눈치챈 그…

‘붉은 행성’ |2021. 02.23

“나는 하나의 행성에 온전히 혼자 남은 최초의 인간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화성 ‘아레스3’ 탐험대원 중 한 명이다. 그는 모래 폭풍이 우주선의 한계 허용치보다 강해지면서 탐험대가 급히 탈출하는 과정에서 조난을 당한다. 부상을 입었지만 극적으로 생존한 이 대원(마크 와트니)은 극한 조건의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발한 …

쿠데타 데자뷔 |2021. 02.22

3개월 후면 5·18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는다. 아프고 힘든시절이었지만 불혹의 세월을 보내면서 가슴속 상처가 아물었나 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요즘 미얀마에서 진행되는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 소식을 접하면서 80년 5월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전두환과 군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민주화를 갈구하는 타는 목마름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 일본 |2021. 02.19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인간은 자연 재앙이 발생하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본능이었다. 먼저 부정한 짓을 저질러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은 아닌지, 조상을 욕되게 하거나 묘를 돌보지 않아 동티가 난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했다. 임금이나 지도자들은 자신의 덕이 부족해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가뭄에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고 지진이 나면 해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