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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고
해를 품다 |2019. 12.31

“…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같은 것이 차차 나와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투명)하기는 호박도곤(보다) 더 곱더라.” 고교 시절 배운 ‘동명(東溟)일…

무한(無限) |2019. 12.30

바닷가 모래알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셀 수 있을까?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크기, 그리고 아득히 펼쳐진 광활한 모래밭의 면적에 질려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거나 ‘무한하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위대한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모래알 계산’(Psammites)이라는 책 첫머리에서 “갤론…

위성정당 |2019. 12.27

위성정당은 일당제 국가에서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존재하는 명목상의 정당을 말한다. 이런 정당은 정당의 존재 이유인 ‘정권교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성정당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선거법 개정. 망치와 노루발못뽑이 등 연장까지 등장하더…

완벽한 거짓 |2019. 12.26

1998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에서는 미래 인간이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은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 빈센트. 그의 운명은 심장 이상에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니고, 31세에 사망하는 것이었다. 좌절한 부모는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안톤을 출산한다. 안톤에게 항상 뒤지며 열등감을 겪던 그는 17세…

난장판 |2019. 12.25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이자, 가문의 흥망이 달린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 때문에 시험장은 수년 동안 수학해 온 전국 각지의 수많은 선비들이 몰려들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조선 숙종 이후 서얼(庶孼) 출신까지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 응시자의 신분 계층이 확대되면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응시생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16…

크리스마스 선물 |2019. 12.24

12월 25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 가톨릭의 제의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의식)를 의미하지만, 이날이 예수의 탄생일인지는 아직까지도 분명하지 않다. 초기 그리스도 교도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 등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다고 알려진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

성탄 선물 |2019. 12.23

옛 문헌에 자주 나오는 앵무배(鸚鵡杯)는 앵무새 부리 모양의 술잔을 말한다.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은 “앵무배로, 백 년 삼만육천 일을, 하루에 모름지기 삼백 잔씩 기울이리”라고 노래했다. 앵무배는 조선 사대부들 사이에서 귀한 대접을 받은 탓에 종종 뇌물로도 사용됐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가 펴낸 ‘선물의 문화사’에는 앵무배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

삭스핀 |2019. 12.20

바다에서 상어와 직접 부딪치거나 상어에게 해를 입은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어 하면 대부분 바다의 포식자나 식인 괴물을 떠올리게 된다. 상어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은 아마도 1975년 개봉한 ‘죠스’라는 영화에서 식인 백상아리의 포악성이 두드러지게 부각됐고, 이후 비슷한 영화들이 인기를 끈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해양소설 작가로 영화 …

‘숲’에서 ‘쉼’ |2019. 12.19

언제나 찾아가 쉴 수 있는 ‘숲’이 회사 가까이에 생겼다. 숲속에 들어서니 한여름 풍광이 펼쳐진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내다보이고, 연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햇살을 보고 있으니 눈이 부시다. 한겨울에 이런 풍광을 만날 리 없다. 그러니 내가…

가족의 범위 |2019. 12.18

취업 준비생 A씨는 3년째 전남대 후문 원룸촌에서 친구와 살고 있다. 목표로 하는 직장은 다르지만 ‘취준생’이라는 공통점에 월세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B씨는 동료랑 나주 혁신도시 아파트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둘 다 미혼이라 주말이면 전남 지역 관광지나 맛집 투어를 다닌다. 이들처럼 가족은 아니지만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 |2019. 12.17

19세기에 카메라를 개발하려는 발명자들을 괴롭힌 것은 이미지를 영구히 고정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찾는 것이었다. 마침내 1826년 프랑스 니엡스(1765~1833)가 현대적 의미의 최초 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여덟 시간이나 노출해 찍은 사진을 ‘태양이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의 ‘헬리오그라프’(Heliograph)라고 이름 붙였다. 니엡스와 파트…

선택의 기준 |2019. 12.16

한 명과 두 명, 한 집안과 한 지방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고사를 돌이켜 보면 ‘불가피한 선택’에 대한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먼저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문고 갑을 쏘다’라는 설화. 신라의 제21대 왕인 비처왕이 천천정(天泉亭)에 이르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

원더골 |2019. 12.13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이었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 이 한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월드컵 89년 역사에서 나온 모든 골(2546골) 가운데 최고의 골과 최악의 골을 다 넣었다. 최고의 골은 하프라인 아래에서 공을 잡아 60여m를 질주한 뒤 수비수 다섯 명과 골키퍼까지 따돌리고 넣은 원더골이다. 최악의 골은 이른바 ‘신의 손’ 논란을 일으킨 골.…

맥쿼리와 광주 |2019. 12.12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이하 맥쿼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고, 취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난 2006년 5월의 일이다. 2001년과 2004년 제2순환도로 1구간을 28년간, 3-1구간을 30년간 관리·운영하기로 광주시와 협약을 맺은 이 펀드는 도로 이용자에게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매년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지원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펀드가 돈…

이합집산 |2019. 12.11

내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한창이다. 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이합집산’은 한국 정치의 특징으로 꼽힌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의 실익을 좇아 노선과 계파에 따라 흩어지고 다시 뭉치기를 반복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를 변형주의(Trasformismo)라 하여 정당의 끊임없는 변화와 변형으로 해석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