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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고
공포의 전염 |2020. 02.25

지난 2003년 봄, 홍콩에 출장갔을 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봤다. 버스에 탄 승객이든 거리를 걷는 사람이든, 굳은 표정으로 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가 한창 창궐하던 때의 홍콩 시내 풍경이다. 공포의 사전적 의미는 ‘두려움’(恐)과 ‘무서움’(怖)이다. 인간은 수만 년에 걸…

철가면 |2020. 02.24

검은 벨벳으로 만든 가면(mask)을 쓴 루이14세는 바스티유 감옥 벨트디엘 탑 3층의 한 감방에 도착했다. 작은 감방 구석에 놓인 침대에는 철가면을 쓴 남자가 베개에 머리를 대고 축 늘어져 있었다. 가면은 얼굴 전체를 푹 뒤덮고 있었고 그것을 벗기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했다. 가면의 눈과 코 부분엔 작은 구멍이 나 있어, 보거나 숨 쉬는 데는 그런대로 문제…

수구초심 |2020. 02.21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제목이 데카르트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이탈리아 축구선수 안드레아 피를로의 자서전이다. 날카로운 킥, 왕성한 활동량, 안정적인 볼 배급, 정교한 롱패스, 터프한 수비, 강력한 슈팅. 이 모든 능력을 갖춰 ‘그라운드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피를…

‘일레븐 브리지’ |2020. 02.20

전남 연안의 바다를 다도해(多島海)라 부르는 것은 섬이 많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모두 3153개의 섬이 있는데 이 가운데 62.5%인 1969개가 전남에 산재해 있다. 이 때문에 섬을 브랜드로 내세워 관광객을 유치하는 자치단체까지 등장했다. 신안군은 관내에 섬이 1004개 있다 하여 ‘천사 섬’이란 네이밍을 내세운다. 여수는 365개의 섬이 있다며 1년 …

‘이름 팔이’ 정치 |2020. 02.1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봉황 마케팅’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하면서 지나치게 현 정부 청와대 출신 이력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과거 각종 선거에서도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전·현직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경력을 앞세운 후보들이 많았다. 특히 광주와 전남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

사과의 방법 |2020. 02.18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자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소했다가 취하했지만 계속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임 교수는 지난달 28일 어느 일간신문에 기고한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여권이 촛불 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고 있다”며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민주당은 임 교…

탄핵의 강 |2020. 02.17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하데스 왕국에는 모두 다섯 개의 강이 있다. 아케론(슬픔), 코키투스(탄식), 플레게톤(정화), 레테(망각), 스틱스(증오)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레테의 강은 망자가 죽음의 신 하데스가 관장하는 명계(冥界)로 들어가기 전에 건너야 하는 강이다. 이곳의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은 물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레테의 강을…

전염병과 역사 |2020. 02.14

역사적으로 전염병 창궐은 사회나 문화를 바꾸고 심지어 한 국가나 문명을 멸절시키기도 했다. 전염병 가운데 한 번 발생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은 질병으로는 우선 독감을 꼽을 수 있다. 독감은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등 역사마저 바꿨다. 독감은 문헌으로 볼 때 고대와 중세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의학계에…

‘너를 만났다’ |2020. 02.13

들을 때 왠지 마음이 울컥해지는 노래들이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동요 ‘섬집 아기’도 그런 곡 중 하나다. 꼭 가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로 연주하는 ‘섬집 아기’를 듣거나, 낮게 깔리는 첼로 연주를 접할 때도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하니깐. 어제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

무한정 수사 |2020. 02.12

복강(腹腔)은 복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곳에 장기 대부분이 들어 있다. 복부에 작은 구멍을 만든 뒤 내시경과 수술기구를 통해 치료하는 ‘복강경 수술’은 외과수술 분야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복부의 특정 부위를 절개하는 개복 수술에 비해 입원 기간이 짧아 일상으로 서둘러 복귀할 수 있고, 감염에 따른 부작용도 덜했기 때문이다. 수술 후 흉터도 작…

구례 호양학교 동종(銅鐘) |2020. 02.11

1907년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보자. 그해 1월 의병을 일으킨 담양 출신 녹천 고광순(1848~1907)은 8월이 되자 부대를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자리한 연곡사로 옮긴다. 장기 항전해 대비해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해 힘을 모으기 위한 ‘근거지계’(根據之計)였다. 그리고 녹천은 문장가인 매천 황현(1855~1910)에게 격문을 써 줄 것을 청한다. 매…

체르노빌과 코로나 |2020. 02.10

바둑 고수들이 복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몇 가지 의문이 들곤 한다. “반상에 착점해 놓은 바둑돌이 수백 개나 되는데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처음부터 다시 놓을 수 있을까?” “복기를 해 나가다 보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막상 고수들에게 물어보면 “복기는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으며, 복기를 해 보…

뜻밖의 난적 |2020. 02.07

하나의 유령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신종 코로나 공포’다. 불안과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파돼 16번 확진자가 발생한 뒤 광주의 거리는 온통 ‘마스크’로 뒤덮였다. 18번·22번 확진자까지 한 가족 3명이 감염되고, 16번 확진자가 병원 등에서 306명을 접촉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광주는 발칵 뒤집혔다. 휴대전화에는 시시각각 안전…

관성의 법칙 |2020. 02.06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유명한 중세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성당에서 지겨운 설교를 듣다가 일정한 속도로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쳐다봤다. 그는 집에서 몇 차례 실험한 뒤 할아버지의 시계를 발명해 냈다. 나중에는 다시 실험을 통해 진자의 진동 주기가 진자의 무게나 진동 폭과 관계없이 오직 진자의 길이에만 비례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다. 일상…

전략공천 |2020. 02.05

선거철이면 ‘전략공천’이라는 단어가 각종 언론매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전략공천’(戰略公薦)은 당선이 유력한 특정 후보를 정당이 경선 과정 없이 입당 절차만으로 공천하는 것을 말한다. 정당이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특정 인물을 공직선거 후보자로 추천하는 것이다. 기존 예비 후보들의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선거구에 적용되는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