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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
석당(石塘) 나경적(羅景績)의 실학사상 |2020. 02.03

호남은 역시 대단한 곳이다. 이른바 ‘실학’이라는 학문은 서울과 근기(近畿) 일대에서만 활발하게 논의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우리가 이미 밝혔던 대로 18세기 호남에서는 ‘3천재’(三天才)라고 불린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석 등 탁월한 실학자들이 활동하여 서울과 근기 지역의 학자들에게 내리지 않을 업적을 남겼었다. 평안도·함경도·황해도는 물론 충…

‘기생충’과 ‘로컬’ |2020. 01.20

작년에 한국에서 1000만 관객 동원을 달성하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새해에도 화제를 이어 가고 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와 같은 영화들로 이미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기생충’은 해외에서 평단의 반응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적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

정 깊어진 우상들과 결별하기 |2020. 01.13

사람의 인식과 판단이란 얼마나 빈약하고 알량한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제까지 알았던 것이 오늘은 더 이상 맞지 않을 때, 큰 배신감과 격한 분노를 느낀다.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의심하고 부정해야 하는 탓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력과 인식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고통스러운 자…

정체성을 품은 도시와 공간 |2020. 01.06

회색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이 어느 날 도시에 등장한다. 매일 숫자가 불어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회색의 신사들은 “‘시간 절약’이나 ‘윤택해지는 삶’과 같은 포스터들을 사방에 붙이고, 도시 사람들을 하나둘 꼬드겨 시간 절약 거래를 체결하더니, 이윽고 도시를 장악해 버린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도시의 시공간을 뺏어 버린 회색 …

18세기 호남학자 손재 박광일 |2019. 12.30

16세기의 호남학은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배출로 너무도 찬란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시문학에서도 호남의 문인들은 조선 문단을 장악할 정도로 우수한 문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일재 이항, 하서 김인후, 미암 유희춘, 고봉 기대승, 사암 박순, 건재 김천일 등 탁월한 학자들이 호남학을 온 나라에 펼치면서 성리학의 논리가 세상을 이끌어 갔다. 그런…

‘박하사탕’의 광주, 또 한 번의 20년 |2019. 12.23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철길에서 열차와 맞부딪치는 장면은 한국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9년에 제작되어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새해 첫날 개봉되었다. 주인공 영호는 1997년 IMF 금융위기에 의해 몰락한 인물로 그려졌다…

자기 희화화, 위장된 부끄러움의 몸짓 |2019. 12.16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부끄러움이 엄습하는 것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성찰의 첫걸음이며 더 노력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탁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큰 결핍이며 결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면의 …

불확실성을 극복하자 |2019. 12.09

벌써 2019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훈훈한 이야기들과 희망적인 2020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시기다. 한데 최근 TV 뉴스나 여러 미디어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대립·갈등·반목에 대한 이야기뿐인 것 같다. 우리나라 내부 문제뿐만 아니라 외국 관련 뉴스도 정치·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대립을 전…

전남대 지하신문 ‘녹두’(綠豆) |2019. 12.02

이제는 우리 지역 민주화운동 역사도 조금씩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40년이니, 반세기 가까운 시절의 회고를 통해 옛 역사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1985년,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려 양심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숨이 막혀 허우적거릴 때였지만, 우리는 결코 눈 감고 살아갈 수는 없었…

송가인과 유산슬, 그리고 문화비평의 종언 |2019. 11.25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이 뜻밖의 전국적 화제 속에서 지난 5월 2일 종영된 직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우승자 송가인을 비롯한 주요 입상자들이 총출동한 ‘미스트롯 전국투어 공연’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5월 25일 인천 공연을 시작으로 고작 한두 달 사이에 고양, 광주, 전주, 천안, 대구, 안양, 창원, 의정부, 부산, 대전, 수원,…

바벨탑과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2019. 11.18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이야기하기로는 바벨탑이 단연코 대표적이고 특별하다. 흔히 이 탑은 현재에 주어진 삶을 넘어서 감히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바벨탑 이야기는 성경에도 기록될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탑을 쌓은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인들로 ‘바벨’은 곧 바빌로니아라는 고대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빌론에서 이교도의 탑이 하…

개발의 방향 |2019. 11.11

얼마 전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열린 가을 음악회를 다녀왔다. 음악회 장소로 가는 길들에서 과거와 함께 변화된 양림동의 정취를 느꼈다. 그렇게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오래 전 지역 활동가 한 분이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양림동 주공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이제 양림동도 음영의 구분이 뚜렷해지겠구나’ 걱정하시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새롭게 들어서…

통유(通儒) 고봉 기대승 선생 |2019. 11.04

음력 9월 초정(初丁)은 바로 월봉서원(月峯書院) 추향(秋享)의 날이었다. 월봉서원은 조선왕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퇴계·율곡과 같은 수준의 성리학자 중 한 분인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사당이 있어, 많은 선비들이 모여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고봉은 바로 호남의 가장 큰 고을인 광주의 상징적인 학자이다. 서원으로…

클래식과 대중성 |2019. 10.28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관람을 위해 운암동 문화예술회관에 갔다. 홀 중앙의 티켓박스로 가서 예매해 둔 입장권을 찾았다. 점점 나빠지는 시력 탓에 1층 앞쪽 자리를 선호하는데, 영화관에서처럼 프라임존에서 비껴난 앞쪽 좌석이 오히려 저렴하다. 세 단계로 나뉜 티켓 가격에서 제일 비싼 R석이 3만 원, 중간인 S석이 2만 원, 가장 싼 A석이 1만 원이다…

당당함과 오만, 그 섬뜩한 한 끗 차이 |2019. 10.21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어느 고위 공직자의 태도에 대한 평가와 묘사가 자못 흥미롭다. 한 사람을 두고 태도와 언어 사용이 ‘당당하다’는 쪽과 안하무인이라는 입장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당당하다는 말처럼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 드문 데도 불구하고 혼란스럽다. 당당함은 사전적 풀이에 의하면 사람이나 그 입장·태도가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