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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한센 인권의 날 제정을 제안하며 |2019. 06.25

그날 아침 여덟 시, 입원 환자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3000명이 보는 앞에서, 경북 성주가 고향인 스물일곱 살의 환자 이춘상은 수오 원장에게 “너는 환자들에게 무리한 짓을 했으니 내 칼을 받아라”라고 외쳤다. 그는 거사 후에 체포되어 소록도의 감금실에 감금되었고, 얼마 후에 공회당에 차려진 임시 법정에서 자신의 거사가 일시 귀성 허가의 불공평, 일상 작업의…

무엇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가 |2019. 06.18

온 산의 푸르름이 신록에서 녹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여름의 초입, 때맞추어 모처럼 친구들과 두물머리 세미원(洗美苑)에 놀러 갔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옛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세미원에는 여기저기 연못에 동서양의 가지가지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항상 그 …

화산에 올라 강호를 비웃다 |2019. 06.11

“중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시안(西安)을 다녀오지 않으니 중국을 다녀왔단 말을 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이탈리아 로마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서둘러 송재소 교수의 중국 인문기행에 합류한 분의 말이었다. 시안과 그 일대는 중국 고대의 오랜 중심 무대였다. 나야말로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독서에 매진하고자 일에서 물러난 상황인데도 시간과 …

18세기 과학에 밝았던 관료의 비운 |2019. 06.04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일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는 이가환(李家煥)과 정조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떠올린다. 한국 실학의 종주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종손자이기도 했던 이가환은 정조 치세에서 공조판서를 역임한 고관이었다. 학식과 총명이 대단해서 다산도 경탄해 마지않았던, 가히 천재였다. 정조는…

봉준호의 ‘기생충’ 탐구 여정 |2019. 05.28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2019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류의 세계화를 환호하는 온갖 미디어의 찬사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중이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라는(인디 와이어·Indie Wire) 대목처럼 그의 전작들이 하나의 회로를 타고 오버랩 된다. 소수 지배층과 다수 피지배층 간의 위계질서가 저지르는 만행을 블랙 유머로…

서유진과 5월 운동 |2019. 05.21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는 ‘5월 운동’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1980년 5월, 열흘간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진행된 시민들의 투쟁을 당시 신군부와 언론은 ‘광주사태’라고 불렀는데, 이에 대한 반대 개념은 ‘광주민중항쟁’이었다. 두 가지 모두 1980년 5월의 사건을 지칭한다. 그 시민항쟁이 철저한 탄압에 의해 막…

대북 식량 원조는 ‘인간에 대한 예의’ |2019. 05.14

필자가 특임 공관장을 지내던 2005년 4월 2일, 요한 바오로 2세가 85세로 서거했다. 그의 장례에 유럽 전역에서 무려 400만 명의 청년들이 문상하러 로마(상주 인구 400만)로 몰려오자 몇몇 언론은 사태를 분석하는 데 흥미를 보였다. 1978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발표한 교황직 백서 ‘인간의 구원자’(1979년3월4일)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019. 05.07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春來不似春)” 이 시구(詩句)는 중국 한(漢)나라 때 북쪽의 흉노 추장에게 정략적으로 시집보내진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처지를 읊은 것이다. 왕소군이 끌려간 추운 오랑캐 땅에는 봄이 와도 풀 한 포기 돋지 않는다. 그러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춘래불사춘’(…

금기에 담긴 뜻은 |2019. 04.30

기피하는 말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금기(禁忌·taboo)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다. 각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금기들에는 대개 물질적·정신적 기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금기에는 또한 인간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거나 인과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해 유독 많은 금기 사항…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2019. 04.23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건 외모적 동일성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 시선, 태도 때문인지 모른다. 사실 외모는 몰라보게 변했는데, 눈빛이 그대로인 경우가 있다. 반가워하는 시선, 따스한 눈빛, 살피는 시선, 무언가를 훔치려는 눈의 표정. 사람은 타인을 보는 자기 시선을 결코 볼 수 없다. 그 시선은 오…

삼일 정신, 100년의 꿈 |2019. 04.16

3월 1일 해 질 녘, 창밖의 태극기를 내리면서 생각했다. 하루론 부족하지 않나. 삼일 운동 100주년인데, 올해 1년 정도는 내내 게양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이겠지만. 최근 발간된 두 권의 책이 우선 주목된다. 역사학자 박찬승 교수의 ‘1919’와 헌법학자 한인섭 교수의 ‘100년의 헌법’이 그것이다. …

곰배령 야생화는 누가 대표하는가 |2019. 04.09

우리 정치 문화 개혁의 시금석이라 평가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싸고 목하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모름지기 개혁을 위한 논쟁은 뜨거울수록 좋으니까 이런 시끄러움을 딱히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감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논쟁의 방향이 이 제도가 우리 정치 문화를 얼마나 바꿀 것인가 하는 점보다 정당별 유불리에 더 초점을 맞…

사면은 없어야 한다 |2019. 04.02

다산 정약용은 ‘원사’(原赦)란 제목의 글을 남겼다. ‘원사’(原赦)는 ‘용서란 무엇인가를 따진다’는 뜻이니 요즘으로 치면 ‘사면(赦免)이란 무엇인가’란 의미이다. 다산은 서두에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신하 오한(吳漢)이 죽기 직전 광무제에게 올린 ‘신무사’(愼無赦)라는 세 글자를 문제 삼는다. 사람들은 이 세 글자를 옳은 말로 여기지만, 자신은 …

쥐와 야합한 고양이 |2019. 03.26

다산 정약용의 작품 중에 ‘고양이’란 제목의 장편 우화시(寓話詩)가 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온갖 못된 짓을 해서 주인의 근심이 가득한데, 한술 더 떠서 이 고양이가 쥐들과 야합하여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왜 쥐와 야합을 했을까? 이 시에서는 “쥐들은 훔친 물건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닌…

화려함과 비참함 |2019. 03.19

연일 충격적인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그렇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 미세 먼지까지 더해지는 스트레스. 그런 일상적 스트레스를 풀고픈 욕망의 에너지로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유흥 문화가 어느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 유흥 놀이판에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