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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2014. 05.07

지난해 5월, 모스크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의 일리아 레핀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No one waited for him· 1884년 작)라는, 다소 슬픈 제목의 그림 때문이었다. 오래전 도록에서 봤던 작품이었지만 막상 ‘진품’을 보니 더 가슴이 먹먹했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함축적으로 묘사한 ‘아무도…’는…

‘틈새호텔’은 달려야한다 |2014. 04.16

지난해 3월 일본 21세기 가나자와 미술관을 찾은 기자는 가슴 뿌듯한 경험을 했다. 앤디 워홀,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 속에서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한국작가 서도호(53) 때문이었다. 가나자와 미술관에서 만난 서도호 특별전은 반가움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

광주시향, 능력을 보여줘! |2014. 04.09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부천시는 ‘회색도시’였다. 1973년 시 승격 이후 인구와 공장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교통난과 대기오염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내세울 만한 관광명소는 고사하고 시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문화’도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수도권의 작은 공업 도시였던 부천은 이제 …

피라미드와 사다리 |2014. 04.02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남부시장 2층에 들어선 ‘청년몰’의 영업규칙이다. 기성세대들의 눈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슬로건이지만 20여 개의 점포는 금과옥조로 여긴다. 점주들의 평균 나이는 스물 아홉. ‘범이네 식충이’, ‘순자씨 밥줘’, ‘만지면 사야 합니다’ 등 점포 문패들도 이색적이다. 청년몰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남부시장을 문화…

‘문화 뒤풀이’ 즐기는 리더 없나요? |2014. 03.26

지난 2006년 4월 중순, 광주 나인갤러리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불쑥 나타났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 대사였다. 한국에 부임한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한 그는 공식일정을 하루 앞두고 통역요원만 대동한 채 예술의 거리를 찾았다. 마침 개인전을 열고 있었던 서양화가 조근호는 TV에서만 봤던 ‘VIP’의 깜짝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

문화계의 ‘공석(空席) 불감증’ |2014. 03.19

요즘 서울 연극계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신임 국립극단 예술감독 임명을 놓고 시끄럽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지난달 3일 문광부는 임기 3년의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김윤철(65) 국립예술자료원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3개월 동안 ‘만지작 거린 끝에’ 내놓은 문광부의 카드가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를 비롯한 연극 단체들은 신임감독이 제작 경험이 없…

출판기념회 유감 |2014. 03.12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등 수상자가 없는 2등을 차지하고 귀국하던 날, 담당공무원이었던 선생님께선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를 열어주셨다. 국위선양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만 허용되던 이벤트를 마련해주신 것이다.”(정명훈) 책장을 넘기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들의 헌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김동호 …

이제 ‘컬쳐버시아드’다 |2014. 02.26

지난 8일 새벽(한국 시각) 4만 여명이 운집한 러시아 소치 피슈트 올림픽 스타디움. ‘ 러시아의 꿈’이라는 주제로 열린 소치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의 나라’ 러시아의 부활을 알린 한편의 드라마였다. 주제 그대로 러시아의 모든 것을 압축해 보여준 개막식은 전쟁과 평화, 백조의 호수, 봄의 제전 등 문화콘텐츠로 채운 고품격 예술의 총체극이었다. 이날 기…

‘문화가 있는 수요일’ |2014. 02.19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뉴욕 맨하튼 5번가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퍼스트 프라이데이 콘서트(first friday concert·금요콘서트) 때문이다. ‘Art After Dark’라는 주제로 열리는 금요콘서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간판프로그램 중 하나. 지난 2005년 첫선을 …

‘김보현 미술관’을 아세요? |2014. 02.12

평안남도 출신의 천재화가 이중섭(1916∼1956)은 6·25 동란기인 1951년 삶과 예술의 자유를 찾아 제주도로 남하했다. 서귀포 칠십리의 물새소리를 들으며 가족들과 지냈던 1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올해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8년이 지났지만 서귀포에 가면 아직도 화가의 체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제주시가 지난 2002년 개관…

‘문제적 화가’ 손상기를 기억하자 |2014. 02.05

몸집보다 큰 봇짐을 머리에 인 어머니와 그 옷자락을 잡아끄는 아이(‘나의 어머니’), 성냥갑을 무질서하게 포개놓은 듯한 판잣집(‘난지도’), 허리가 꺾인 채 화병에서 말라져 가는 꽃(‘해바라기’)…. 가까운 과거에는 흔해 빠졌을, 유화의 오브제로 선택하지도 않았을 이미지들이 4개의 전시실에 펼쳐졌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거나, 혹은 보는 사람들의…

이젠 광주서 ‘남향집’을 보고싶다 |2014. 01.22

지난 2012년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가 열렸다. 고 오지호 화백(1905∼1982)과 그의 아들 오승윤(1939∼2006), 그리고 손자·손녀인 병재·수경 씨를 한자리에 초대한 것이다. ‘위대한 유산전’이라는 주제로 열린 프로젝트가 화제를 모은 건 고 오지호 화백 30주기를 맞아 3대에 걸쳐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오씨 일가의 예술세계를…

윤이상 vs 김광석 그리고… |2014. 01.15

캐나다 국경과 인접한 미국 북동부의 메인주 커싱에는 크리스티나 올슨 하우스라는 아담한 농가가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전혀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시골집이지만 매년 미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지난 2011년 미 연방 사적지로 지정된 후에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도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여느 농가나 다름없는 올슨 하…

당신의 ‘어바웃 타임’을 위하여 |2014. 01.08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왠지 모를 설렘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봤던 건물과 거리이지만 마치 낯선 도시를 걷는 여행자 처럼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지난해 연말 관람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감독 리차드 커티스)은 기자에게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되돌아 보게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팀은 성인이 되던…

5무(無)의 새해를 위하여 |2013. 12.25

일흔 세 살의 선생은 고령이 무색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어찌나 달변이던지 막힘이 없었다. 잠시도 쉬지않고 말을 이어가는 바람에 수첩에 받아적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날 기자는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선생의 말을 중간에 ‘끊는’ 무례를 범해야 했다). 게다가 1시간 30분의 인터뷰가 끝나자 엘리베이터 앞까지 기자일행을 배웅하는 등 친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