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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진실을 찾아서
<10> 남은 과제들 |2019. 12.26

올해 3월부터 9회에 걸쳐서 5·18민주화운동 주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살펴봤다. 군 기록물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현재까지 쟁점이 되는 사건들의 진실과 왜곡의 역사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주제와 향후 진상규명의 과제를 살펴보면서 올해의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전두환과 5·18민주화운동…

<9> 국군광주병원 작전의 진짜 목적은 505보안부대 확보였다 |2019. 11.21

계엄군은 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5월 21일 17시경 광주 시내에서 철수했다. 신군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광주 이외의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하여 시내에서 철수한 병력을 광주시 외곽에 재배치하고, 외부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계엄군의 봉쇄 작전은 5월 27일 도청 탈환 작전을 전개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봉쇄 …

<8> 광주교도소 습격설의 진실 - 신군부가 ‘광주 청문회’ 때 문서 조작해 퍼뜨린 허위사실 |2019. 10.24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장한 시민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이른바 광주교도소 습격설은 숱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처럼 간주되고 있다. 심지어 5·18민주화운동의 사법적 정의를 구현한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 행위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광주교도소 습격은 신군부의 주장이 대부분 채택되었다. 이처럼 진실에 다가가지 …

<7> 헬기 출동기록·탄흔·목격자·피해자 모두 있는데 ‘오리발’ |2019. 09.26

헬기사격의 결정적 증거가 전일빌딩 탄흔으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헬기사격의 가해자는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은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헬기사격의 진실을 헬기작전에 관한 군 기록 검증을 통하여 조명해보고자 한다. ◇헬기사격에 관한 신…

<6> 5월 21일 군 발포 Ⅱ |2019. 08.22

7월 연재(25일자 10면)에서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 전투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고,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광주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돗개 하나 발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개된 실탄 분배는 군의 사격이 어떻게(how)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신군부 핵심관계자들의 광주 방문은 누구의…

<5> 5월 21일 군 발포 |2019. 07.25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군 발포에 관한 부분이다. 국민의 군대가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발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지만, 아직까지 왜(why), 누구의 명령(who)으로, 어떻게(how) 사격행위가 이루어졌는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군 기록의 발굴과 검증을 통하여 군 발포의 진실에 접근…

<4> 5월 18일의 진실 |2019. 06.20

사라예보의 총성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 앞 시위가 5월 항쟁을 촉발하고,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란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군 기록의 발굴과 검증을 통하여 5월 18일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자 한다. ◇5월 18일 상황에 대한 신군부의 주장 전두환은 회…

<3> 5월 27일 도청 작전 재구성 |2019. 05.23

5월 27일은 5·18항쟁의 10일을 함축하고 있다. 5월 항쟁의 마지막 날이었다는 시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죽음을 예견하면서 도청에 남은 시민들의 저항과 희생은 이후 5월 운동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월 27일 전개된 군 작전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한 적은 없다. 항쟁의 마지막 날에 관한 의미부여에 앞서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필요…

<2> 5·18 왜곡의 역사 |2019. 04.25

5월의 진실을 찾는 여정은 가해자인 신군부와 피해자인 시민이 벌이는 진실공방의 과정이었다. 1980년 5월의 체험에 기반한 시민들의 기억과 증언은 명백한 진실의 증거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되었다. 객관성을 이유로 시민들의 기억과 증언에 대해서는 또 다른 증거를 요구했다. 가해자인 신군부는 시민들이 기억·증언하는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

<1> 프롤로그 국방부보고서 ‘5·18 LMG 기관총 사망자 47명’ |2019. 03.21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사건이다. 한국사회에서 5·18민주화운동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에 관한 명칭의 변화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깊은 연관이 있다.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인 ‘광주사태’에서 신군부의 정권 찬탈 음모에 맞선 영예로운 ‘민주화운동’으로 바꿔 불리는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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