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518
40주년 이후 5·18 전국·세계화 더 필요하다 |2020. 05.29

5월 항쟁이 발발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는 또다시 미래 세대를 위한 5·18민주화운동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18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각종 학술토론회에서는 현재의 5·18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전국화·세계화에 주력하자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광주 전역 도시재생·마을 공동체 연계 5·18정신 일상화 가능한 도시 만들자” |2020. 05.21

“광주는 도시 자체가 5·18 자원이다. 광주 전역을 5·18의 현장화·일상화·생활화가 가능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안평환 (사)광주도시재생공동체센터 대표는 20일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 245에서 열린 ‘5·18 40년 이후의 기념과 계승을 위한 집중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40주년을 맞아 변화한 사회정치적 상황…

5·18 당시 ‘편의대’ 기사 보안사가 검열 삭제 |2020. 05.21

‘계엄군이 지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편의대’ 활동을 하다 시민군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취재해 언론사에 올린 기사를 보안사가 검열해 삭제했다는 문서가 최초로 발견됐다. 편의대란 평상복 차림으로 위장해 일반 시민들처럼 행동하면서 첩보, 정보수집과 선무 선동 등의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로 이뤄진 임시특별부대를 말한다. 광주일보가 20일 송영…

5·18당시 계엄군 특식비는 장교 500원·사병 200원 |2020. 05.21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에게 지급된 ‘특식비’는 출동부대인 경우 장교는 500원이며, 병사는 200원이었다. 대기 병력에게도 장교는 200원, 병사는 100원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일보가 입수한 1982년 발간된 육군본부 사료인 ‘계엄사’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기간인 1980년 5월 14일부터 31일까지 18일간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7…

서두르세요…5·18 그날의 현장 한시적 개방합니다 |2020. 05.20

군사정권 고문수사의 상징이었던 505 보안부대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을 치료했던 국군광주병원,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현장의 흔적이 남아있던 주남마을 등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정작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던 옛 광주교도소와 적십자병원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특정 시간 외에 출입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고문수사로…

“학생들 붙잡는대로 대검으로 찌르고 총대로 신체 박살 냈다” |2020. 05.19

“18일 오후, M16 현대무기로 중무장한 군인들은 학생들을 붙잡는 대로 총에 꽂은 대검으로 찌르거나 총대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건 치고 받으며 박살을 냈다” 5·18 당시 수배 중이었던 박석무(78·당시 대동고 교사)다산연구소 이사장이 1980년 6월 14∼15일 계엄군을 피해 도망간 서울 은신처에서 작성한 일기는 5월 당시 광주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문 대통령이 위로한 유가족들 40년 견뎌온 모진 세월 |2020. 05.18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이후 3번째로 찾은 제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5·18 국립묘지에서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유가족들에게는 “더이상 생존자와 유족들의 트라우마가 그 가족, 자녀들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서울에도 트라우마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남편 향한 그리움, ‘편지’에 담은 최정희씨 위로= “다시 만나는 날 나 너무 늙었…

5·18 최후 항쟁지 도청에서 승화된 ‘임을 위한 행진곡’ |2020. 05.18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은 5·18 항쟁의 심장이자 상징이다. 40년 전, 광주 시민·학생들이 민주·민주화 대성회를 열고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며 민주화를 촉구했던 광장이었다. 전남대·조선대를 비롯한 10개 대학 학생 3만여 명과 지식인, 시민들은 1980년 5월 14~16일, 이 곳에서 연일 집회와 횃불 행진을 벌이며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다. …

초등학생 “총·공포…무서워 밖에 못 나가는데 나라는 뭐하나” |2020. 05.18

40년 전 광주의 오월을 글로 써 내려간 14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1980년 광주의 처참한 상황을 느끼고 겪은 그대로 기록한 ‘오월일기’로 남겼다. ‘일기(日記)’는 개인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경험·생각·감상 등을 하루 단위로 기록하는 비공식적인 사적 기록이다. 40년전 광주 옛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했던 여대생을 비롯해 당시 초등학생·고등학생·주…

[주목 받는 ‘오월길’] 저항·학살의 현장 그대로 … 아직도 생생한 민주화의 외침 |2020. 05.15

다시 오월이다. 40년 전인 1980년 5월,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시민들의 ‘항쟁’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봄볕이 따가운 이맘때면 광주항쟁의 흔적을 찾아 광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많다. 5월 광주는 시민들이 끝까지 맞섰던 저항의 현장, 신군부가 주체가 된 학살 현장 등이 곳곳에 남아있다. 5월 광주를 오롯이 느낄…

5·18 40주년 주요 사적지 15~24일 개방 |2020. 05.15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제한됐던 5·18 주요 사적지도 40주년을 맞아 개방된다. 14일 5·18기념재단과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에 따르면 옛 505보안부대, 국군광주병원, 광주교도소, 광주적십자병원, 주남마을 인근 시민학살지 등이 오는 15일부터 24일까지 개방, 시민들이 둘러볼 수 있게 됐다. 505 보안부대는 1980년 5월의 처음과 끝…

시대의 아픔 넘어…기억과 치유 통해 문화·인권 마을 탈바꿈 |2020. 05.15

무등산 자락의 한적한 ‘주남마을’ 곳곳에는 주민들 스스로 세운 40개의 ‘솟대’를 발견할 수 있다. ‘솟대’는 과거로부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소통자의 역할을 하며,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전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남마을의 솟대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다. 40년 전 민간인 집단학살과 계엄군의 주둔으로 주남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을 치유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27일 도청 사망 윤상원, 총상 사인→치명상 불명 자살로 |2020. 05.15

박병규. 서호빈. 문용동. 이정연. 홍순권. 박진홍. 윤상원. 민병대. 문재학. 안종필. 박성룡. 유동운. 이강수. 김종연. 김동수. 박용준. 유영선...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과 광주YWCA에서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5·18희생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부활할 수 있…

잊혀지지 않는 아픔…“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 쳐진다” |2020. 05.14

주남마을 주민들에겐 40년 전 참사는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다. “40년이 흘렀어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는 주민들은 당시의 고통을 가슴 깊이 묻어놓았을 뿐이다. 이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보듬는 것은 온전히 이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 월남동 주남마을에는 98명(40가구)의 …

5·18기념재단 40주년 맞아 외국인 대상 온라인 기념식 |2020. 05.14

5·18기념재단이 40주년을 맞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기념식을 진행한다. 13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오는 18일 오후 5시에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국제 온라인 기념식- 한국 민주화를 위한 5·18민주화운동 40년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번 온라인 기념식은 코로나19로 인해 다중이 모이는 행사진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