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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사는 집’
2022년 01월 12일(수) 06:00
충북 청주시에 자리한 ‘운보의 집’은 한국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김기창 화백의 저택이다. 김 화백의 호를 따 이름을 지은 이곳에는 세상을 떠날때까지 기거했던 한옥에서 부터 전시관, 정원, 그리고 부부의 묘가 조성돼 있다.

‘운보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즈넉한 분위기의 연못과 정자가 방문객을 맞는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연못 앞에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길게 늘어선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운보의 집’이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데에는 지난 2018년 안방을 사로잡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공이 크다. 드라마의 촬영무대로 알려지면서 명작의 산실과 그의 손때가 묻은 정원을 둘러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것이다.

관광명소가 된 화가의 집으로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출신의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는 56세가 되던 해, 파리 근교인 이곳에 내려가 말년까지 43년 동안 창작에 몰두했다.

인구가 500명에 불과한 지베르니는 마을 전체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연상케 할 만큼 집과 정원, 작업실 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무엇보다 방마다 설치된 창문으로 들어오는 경치가 ‘걸작’이다. 특히 모네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인 2층 맨 끝방에서 내려다 보는 정원 풍경은 압권이다.

새로운 한해의 시작을 ‘화가의 집’으로 여는 건 지난달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한권의 책 때문이다. 지인은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예술가가 사는 집’(멀리사 와이즈 &케이트 루이스·아트북스)을 접한 순간, 지난해 기자가 광주일보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 ‘사람이 브랜드다-예술가 공간’이 떠올라 집어들게 됐다고 귀띔했다. 모네에서 부터 프리다 칼로에 이르기까지 17명의 예술가와 그들이 살았던 공간이 소개된 책에는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미국 산타페), 반 고흐(프랑스 아를) 등 기자가 오래 전 여행길에 들렀던 곳들도 포함돼 있어 다시 방문한 것 처럼 반가웠다.

사실 지난해 취재차 둘러봤던 국내외 예술가들의 공간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예술가들이 오래 머문 공간은 자신들의 삶 뿐만 아니라 작품에 영감을 준 뮤즈같은 존재였다. 예술가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아뜨리에 등을 들여다 봐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모네가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며 치열한 작품활동을 펼치는 힘을 얻은 건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우거진 지베르니 집이었다.

올해는 한국서양화단의 선구자 고 오지호 화백(1905~1982)이 세상을 떠난지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다행스럽게도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는 오 화백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던 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근 30년간 거주했던 초가(광주시기념물 제6호)가 남아있어 거장의 삶과 예술세계를 되돌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만 했을 뿐 현재는 당국의 관리소홀로 방치된 상태나 다름없다. 운보나 모네의 집 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자산이 될 잠재력이 큰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집을 잃는 다는 것은 예술가들의 삶, 그들의 창작경험과 접속할 수단을 잃는 것이다’(‘예술가가 사는 집’). 2022년 새해, 예술관광중심도시를 표방한 광주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