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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컬렉션의 힘
2020년 03월 04일(수) 00:00
2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간송미술관은 일년에 두번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곤 했다. 현재는 내부 보존공사로 임시휴관중이지만 매년 5월과 10월에 열리는 소장전을 보러 온 이들 때문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수집한 5000여 점의 고미술을 1년에 딱 두 번만 일반에 공개하다 보니 매번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2012년에 열린 ‘진경시대 회화대전’은 단연 화제였다. 그의 50주기를 맞아 보름간 열린 전시회는 하루 평균 5000여 명이 다녀가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시 폐막일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구름인파로 미술관 문턱을 밟는 데만 7시간이나 걸렸다. 이들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와 김홍도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설립 82주년을 맞은 간송미술관은 사실 ‘친절한 곳’은 아니다. 고미술 보전을 명분으로 상설전 대신 매년 두차례만 소장품을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송미술관은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한번쯤 꼭 가보야 할 곳’으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간송미술관은 국보 12점, 보물 8점 등 유물 5000여 점을 보유한 고미술의 보고다.

소장품 가운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고려청자, 신윤복, 김홍도, 장승업 등 조선시대 화가의 미술품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간송의 컬렉션에 눈독을 들인 지자체들은 러브콜을 보냈고, 2016년 치열한 경쟁끝에 대구시가 유치에 성공했다. 대구시는 오는 2022년까지 현 대구시립미술관 인근에 간송미술관 분관을 건립해 문화관광의 플랫폼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미술관의 독보적인 컬렉션은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관광객을 불러 들인다. 근래 국공립미술관이 거장들의 화제작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앞다퉈 구입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광주시립미술관의 컬렉션은 시대적 흐름에서 비켜나 있는 듯 하다. 물론 유명작가의 작품이 곧 좋은 컬렉션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 해 평균 7억 원에 불과한 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으로 한점에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명작을 구입하긴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문제는 시립미술관만의 뚜렷한 방향 없이 ‘관행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매년 광주아트페어에서 1억~2억 원씩 일부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오는 10월 개관을 앞둔 전남도립미술관의 컬렉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남도는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술 전문가 7명의 ‘소장품 구입 추천 위원회’와 ‘구입 심의위원회’를 각각 별도로 구성해 전남미술사 정립을 위한 작품과 한국 근·현대 거장들의 중요 작품 위주로 컬렉션 방향을 정했다. 그 첫 단계로 최근 20여 억 원을 들여 김환기, 천경자 등 지역 출신 거장들의 작품을 구입했다.

21세기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컬렉션은 미술관의 경쟁력이자 도시의 문화자산이다. 문화광주가 차별화된 컬렉션을 가꾸고, 브랜딩해야 하는 이유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