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 별세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등 주옥 같은 시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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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을 생생하면서도 일상의 언어로 노래했던 ‘농무’의 시인 신경림이 2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4세.
문단관계자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시인은 이날 오전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한국 문단의 원로이자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문학적 위상이 남다른 시인이었다. 특히 그의 ‘농무’와 ‘가난한 사랑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대표작으로 고인의 문학적 역량이 결집된 시다.
지난 1971년 발표한 ‘농무’는 농민들의 신명과 삶의 애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농무’는 단순한 춤이 아닌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춤이라는 몸짓을 통해 저항하는 수단으로 의미화돼 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컬/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당대 농민들의 궁핍한 상황을 허름한 공간과 술집 등을 매개로 풀어낸 ‘농무’는 구조적인 문제를 일상 언어와 우리 가락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또 다른 명작 ‘가난한 사랑 노래’는 도시 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편지라는 형식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물질적인 가난 때문에 인간적인 것을 저버려야 하는 시대의 아픔을 시인은 특유의 감성적 시어와 어조로 형상화했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돼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농민들의 한과 아픔을 담은 첫 시집 ‘농무’를 펴냈으며 이후 ‘쓰러진 자의 꿈’, ‘저 푸른 자유의 하늘’, ‘뿔’, ‘낙타’ 등을 발간했다. 만해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유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정양주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한국문단의 거목이 돌아가셔서 아쉬움과 슬픔이 크다.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민중시, 쉬운 우리말로 시를 써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며 “무엇보다 좋은 시를 발굴하고 후배를 키우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앞으로 한국시단이 신경림의 시 정신을 받들어 좀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단관계자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시인은 이날 오전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한국 문단의 원로이자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문학적 위상이 남다른 시인이었다. 특히 그의 ‘농무’와 ‘가난한 사랑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대표작으로 고인의 문학적 역량이 결집된 시다.
당대 농민들의 궁핍한 상황을 허름한 공간과 술집 등을 매개로 풀어낸 ‘농무’는 구조적인 문제를 일상 언어와 우리 가락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 신경림 시인 |
정양주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한국문단의 거목이 돌아가셔서 아쉬움과 슬픔이 크다.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민중시, 쉬운 우리말로 시를 써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며 “무엇보다 좋은 시를 발굴하고 후배를 키우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앞으로 한국시단이 신경림의 시 정신을 받들어 좀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