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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재 만드는 다산의 책 읽기-자녀 교육 이기영 호서대 명예 교수, 초록교육연대 공동 대표
2022년 09월 06일(화) 00:30
기후변화로 일기예보를 시작한 지 114년 만의 최악 폭우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강남이 물에 잠겨 고급 외제차 수천 대가 망가지는 등 길고 무더운 장마가 두 번이나 지나갔다. 그러나 이젠 귀뚜라미가 울면서 선선해져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인류가 탐욕으로 초래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제 30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과학자들이 경고가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도 서로 자국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는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졌고 러시아의 핵전쟁 불사 경고에 이어 핵발전소에 무기고를 설치하고 주변에 서로 포탄을 퍼붓는 등 핵전쟁 위기설까지 난무하고 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검소한 생활로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하며 전 인류가 지혜와 정성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 이젠 더 이상 권력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국가와 기업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지구촌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데 위기 상황에서는 특히 지식인들의 창의적 역할이 중요하다.

정조가 승하한 뒤 다산은 노론에 의해 황사영 백서사건과 천주교 신자라는 빌미로 역적으로 몰려 18년간 땅끝 강진에 유배 갔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혜장 스님이나 초의선사와 유불선을 넘나드는 깊은 지적 교류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키우며 수많은 책을 읽고는 500여 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다. 그는 당시 허례허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통치 논리와 당파싸움에나 이용되던 경학(주자학)을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실용적 경세학으로 다시 썼다.

더 나아가 당대 대부분의 한국사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들을 탐독, 비교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바로잡은 ‘아방강역고’를 편찬했다. 다산은 이 책에서 발해가 거란에 복속되어 우리나라가 작은 반도 민족으로 전락했음을 한탄했다. 거문고를 즐겨 탔던 그는 중국에 의존해 잘못 전달돼 내려온 비과학적 음악 이론인 율려의 체계를 바로 세워 ‘악서고존’ 12책을 완성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어린 자식들을 역병(천연두)으로 잃은 다산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 의서들을 읽고 이에 대처하는 의과학 서적인 ‘마과회통’을 써 수많은 어린이들을 살렸다. 그는 청나라를 통해 접한 서양의 실용적 과학이나 천주교 등 서학을 우리 고유의 전통적 가치관과 잘 조화시켜 백성이 잘 살고 나라가 융성하도록 200년 전 조선의 지성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해 실학의 대가가 되었다. 다산은 이미 당시 동서양을 융합한 통섭의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통섭은 지금 기후 위기로 절멸에 이른 인류세(Anthropocene)를 구하기 위해 지극히 필요한 일이어서 지식인들이 다산의 학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정약용은 가세의 몰락으로 실의에 빠져 술로 지새던 둘째 아들 학유에게 지속적인 편지를 통해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은 물론 어떤 책을 어떤 순서대로 읽고 문장을 어떤 방식으로 써 나가야 할지까지 세세하게 조언해 주었다. 학유는 편지를 통한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술을 절제하고 아버지가 평생 매진해 왔던 주역 해설서 ‘주역심전’(周易心箋)을 완성해 다산의 학문 활동을 도왔다. 아울러 그는 농가에서 매달 할 일과 풍속 등을 한글로 읊은 체계적인 농사 매뉴얼인 ‘농가월령가’를 펴내 만들어 우리 농경 기술과 문화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요즘 많은 아버지들이 직장 내 생존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실상은 교육은 엄마에게 일임하고 아버지는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 고액 과외로 아이들을 일류 대학에 보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유소년 시절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던 부모님께서 시간만 나면 기도서나 경향잡지 같은 월간지를 읽고 계서서 나도 글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처음 알게 된 글자는 벽에 붙어 있던 달력을 어머님께 읽어 달라고 해서 외운 ‘동성화학주식회사’란 글씨인데 비료 회사명이었다. 더 나아가 난 누이들을 볏광으로 끌고 들어가서 초배지로 쓴 신문을 읽어 달라고 졸라 다섯 살도 안돼 초등 교과서를 죄다 읽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자매들 의사를 존중해 주시면서도 늘 자연을 관찰하고 놀이로 삼아 가까이하도록 배려해 호기심을 키워 주셨다. 그러면서도 결코 공부를 강요하시는 일이 없었고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서로 존중하면서도 양보하는 예절과 자유를 가르쳐 주셨다.

덕분에 난 초등생 때 혼자서 기타를 배웠고 중학생 때는 작곡도 시작해 음악학원 한 번 다닌 적이 없는데 이젠 중학 음악 교과서와 한국 가곡집에 실린 ‘한강은 흐른다’(오세영 시)와 2016년 6월 23일 독일의 베를린필 대공연장에서 열리 ‘안중근 평화음악회’에서 초연된 ‘광야’(이육사 시) 등의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다.

이젠 우리의 아버지들이 일찍 귀가해 TV를 끄고 아이들과 함께 매일 책을 읽는 저녁 시간을 만들어 보자. 이젠 위기의 인류 문명을 구하기 위해 다산처럼 동서양을 통섭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가진 많은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책 읽는 아름다운 아버지 운동’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