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감염병 시대, 차별 없이 치료받을 권리
2020년 12월 22일(화) 23:00
어느새 1년,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220개국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7700만 명, 사망자는 170만 명에 육박한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감염자까지 합치면 세계 인구의 10%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세계보건기구)도 나온다. 2000년대 이후 유행했던 사스나 신종 플루,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꼽히는 지난 세기 스페인독감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100년,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인류는 바이러스 앞에 여전히 무력하기만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 우리는 지금 그 터널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스페인독감은 첫 발생 이후 종식까지 2년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역시 내년 말쯤에나 통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백신이 출시돼 일부 국가에서 접종을 시작했지만 효능과 안전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더욱이 인류가 자초한 기후 위기로 인해 감염병은 더 자주, 더 파괴적으로 찾아올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지만, 이런 재난이 계속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공공의료원·전남 지역 의대 절실

코로나 쓰나미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국민의 경우 검사와 치료에 드는 비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공중보건과 의료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덕분이다. 확진자로 격리 치료를 받게 되면 중증도에 따라 331만 원에서 최고 7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이 비용은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80%,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20%를 부담한다. 국민이 낸 보험료로 유지되는 건강보험이 방역 수준을 끌어올린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코로나가 일깨운 또 하나의 가치는 공공의료시설의 중요성이다. 지금까지 확진자 치료는 주로 국공립병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맡아 왔다. 전체 의료기관의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환자의 80%를 책임져 온 것이다. 지자체 보건소들은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확산 차단의 첨병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병상 수 기준 8.9%에 불과하다. 2017년엔 9.2%였으니 오히려 뒷걸음질하는 추세다. 온 국민에게 차별 없이 무상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100%)은 물론이고 캐나다(99.3%), 프랑스(61.6%), 독일(40.7%) 등과 격차도 너무 크다. 국내 의료기관 수로 따지면 더 열악해 전국 평균이 5.1% 수준이다. 이처럼 척박한 공공의료의 현실은 공공병원 확충 대신 민간 의료시장에 역할을 떠맡겨 온 정부 정책 탓이 크다.

민간에 90% 이상을 의존하는 후진적 보건의료 체계로는 감염병 대응은 물론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민간 의존도가 높으면 과잉 진료나 의료비 증가, 수도권 대형 병원 쏠림,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취약 계층의 건강권 약화로 이어진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랬다. 확진자가 폭증하는 시기에 중환자 병상이나 음압병실이 부족해 수백 명이 자가 격리하며 기다리거나 심지어 대기 중에 숨지는 사태까지 속출했다. 병원에서도 집단 감염이 빈발하다 보니 의료 체계가 붕괴 직전의 상황이다. 역학조사관과 감염내과 전문의 등 방역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부실한 공공의료 체계의 개선이 과제로 대두됐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7월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 의대 설립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 가운데 300명은 중증 및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100명은 감염내과나 역학조사관 등 특수 전문 분야로 선발하는 것이다. 한데 이 방안은 의사 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급기야 파업 사태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공공의료 확대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코로나 창궐 공공의료 붕괴 위기

공공의료 확대가 가장 절실한 곳은 전남 지역이다. 인력과 병상 등 의료 여건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전남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2016년 기준 314만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세종시의 두 배가 넘는다. 한데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1.7명으로 서울 3.1명, 광주 2.5명 등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일부 농어촌의 군 지역에는 필수 의료 과목인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응급환자를 거주지에서 치료하지 못하고 다른 권역으로 이송하는 전원율도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러다 보니 중증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일까지 생긴다.

취약한 의료 환경 때문에 연간 80만 명이 광주나 서울 등 대도시를 찾고 있다. 그에 따른 지역 외 유출 비용만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남에는 전국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다. 주민들이 지난 30년간 줄기차게 의대 신설을 요청해 온 까닭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발표되자 이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환영의 목소리를 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록 전남 지사는 지역의 의료 문제를 지역 스스로 해결하는 ‘의료 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도 의대 신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데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원점에서 재논의키로 하면서 자칫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 역시 공공의료원이 없어 감염병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코로나19가 마지막 팬데믹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다음 팬데믹이 닥칠 때 세계는 지금보다 더 준비돼야 한다”고 각국에 공중보건 시스템 강화를 촉구했다. 비단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아프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차별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선진 국가들이 의료 서비스를 상품이 아닌 공공 서비스로 여기는 이유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공공의료는 국방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의사와 공공 병원을 확대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