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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한옥과의 조화 단아하고 정갈한 ‘품격의 정원’
‘화가의 정원’, 랜드마크가 되다 (하)
2020년 09월 28일(월) 00:00
충북 청주에 자리한 ‘운보의 집’은 한국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운보 김기창 화백의 미술관이자 정원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청주 '운보의 집'

지난 2018년 안방을 사로잡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효과를 톡톡히 본 곳이 있다. 충북 청주에 자리한 ‘운보의 집’이다. 드라마의 촬영무대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여름 둘러본 ‘운보의 집’은 수많은 인파로 활기가 넘쳤다. 한옥과 조화를 이룬 운보의 집은 한국의 100대 정원으로 선정됐다.

‘운보의 집’은 한국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김기창 화백의 생가이자, 미술관, 정원이다. 김 화백의 호를 따 이름을 지은 이곳은 세상을 떠날때까지 기거했던 한옥에서 부터 전시관, 정원, 그리고 부부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100대 정원에 선정된 ‘운보의 집’은 청주시를 대표하는 관광명소이기도하다.
‘운보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즈넉한 분위기의 연못과 정자가 눈에 띈다.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연못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한옥, 정원, 수석, 조각 작품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운보의 집은 3만 여 평의 대지에 한옥, ‘운보미술관’. 조각공원, 분재공원, 수석공원 등 4개의 공간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곳은 김 화백의 어머니 고향으로, 운보가 1976년 부인 한국화가 우향 박래현 화백과 사별한 후 7년에 걸쳐 한옥을 지은 후 머물며 작업했던 산실이다.

김 화백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다. 8세 때 보통학교 입학 첫 날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인한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됐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17세에 이당 김은호 화백 문하에서 수학했다.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하루에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한옥에서 나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운보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운보 화백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와 주옥같은 10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에 사용한 다양한 묵과 인장들에서는 운보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 하다.

운보미술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은 바로 ‘예수의 생애 특별관’이다. 운보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산으로 피난을 떠난 후 이듬해부터 예수의 생애 연작 시리즈 30점을 선보였다. 예수와 주변 인물을 한복 차림의 한국인으로 표현한 새로운 시도는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미술관을 나오면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그의 동상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운보의 집의 또 다른 볼거리는 분재, 수석, 조각공원이다. 특히 조각공원에는 유명작가들의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서로를 마보며 활짝 웃는 부부상이 인상적이다. 마치 운보와 우향을 형상화한 듯 하다. 인근에는 부부의 묘가 조성돼 있다.

하지만 운보의 집은 한때 소유권과 운영방식을 놓고 극심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자신의 집을 시민들의 휴식과 예술인들의 문화예술 복합 공간, 장애인들의 미술전문대학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설립자의 취지와 다르게 방향을 잃어 쇠락해가기 시작했다. 운보문화재단과 ㈜운보와 사람들이 공동 관리해왔으나 경영난 등으로 일부 시설이 경매에 넘어간 뒤 소유권과 운영방식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2013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관리권을 위임받은 충북도는 해당 지자체와 함께 공익재산의 일환으로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역을 대표하는 시티투어의 거점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충북의 랜드마크로 브랜드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청주=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수련’ 연작의 풍경 그대로 그림 속을 거니는 듯 ‘신비의 정원’

# 프랑스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자리한 모네의 정원은 전 세계에서 매년 수십여만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화가의 정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모네의 정원’이다. 프랑스 출신의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가 56세가 되던 해 파리생활을 청산한 후 말년까지 창작에 몰두한 곳으로 프랑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인구가 500명에 불과한 지베르니는 마을 전체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 사망할 때까지 43년간 머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이곳에는 모네가 살던 집과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기념품점이 나온다. 모네가 대형 수련 작품을 그렸던 마지막 아틀리에다. 그의 대표작들을 모티브로 삼은 다양한 아트상품이 지갑을 열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기념품점을 지나 정원에 발을 들이면 마치 그의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초록색 계단과 창문이 인상적인 모네의 집 앞에는 이름 모를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관광객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수련’ 연작의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물의 정원’이다. 도로 밑 지하보도를 지나는 순간, 연못 위 수련과 긴머리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연못을 빙둘러 피어있는 수많은 꽃들...그리고 그 유명한 초록색 일본식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익히 ‘수련’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재현된 듯 하다.

산책하듯 연못 주위를 돌며 둘러보는 정원의 풍경은 위치에 따라 제각각이다. 정원에서 나와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네의 집에 닿는다. 거실, 식당, 침실 등 여러 공간에서 모네의 다양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방마다 설치된 창문으로 들어오는 경치가 그림같다. 특히 모네가 말년을 보내고 숨을 거둔 곳인 2층 맨 끝방에서 내려다 보는 정원 풍경은 압권이다. 왜 모네가 지베르니를 선택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풀린다. 전시실 안에는 그의 작품이 가득하다.

지베르니의 매력은 모네의 정원만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모네의 작품 처럼 곳곳에 독특한 문화공간들이 관광객을 맞는다. 넉넉히 시간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면 작은 갤러리와 예쁜 가게, 음식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모네의 집을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계절로 5∼6월을 꼽는다. 그 어느 시절 좋지 않을 때가 없지만 수백 종의 꽃으로 장식된 모네의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그 즈음이다. 모네의 집은 겨울철인 11월부터 3월까지는 휴관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