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 자연요리 연구가 ‘방랑식객’ 임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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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자연요리 연구가 ‘방랑식객’ 임지호
“요리는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이죠”
전국 곳곳 떠돌며 길위서 음식 배워
자신의 호 따 온 식당 ‘산당’ 운영
예능프로그램 방송 타며 대중 사랑받아
개인전 20여차례 개최 화가로도 활동
개인사 기록 다큐영화 ‘밥정’ 가을 개봉
“음식의 본질은 어머니의 큰 사랑”
2020년 06월 23일(화) 00:00
자연재료와 전통양념을 활용해 독창적인 자연요리를 선보이는 임지호 세프.
‘방랑 식객’(放浪 食客)으로 불리는 산당(山堂) 임지호(65) 자연요리 연구가는 이 땅 곳곳을 떠돌며 학교나 주방이 아닌 길에서 음식을 배웠다. 자연은 물론 길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스승이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모든 풀들을 재료삼아 궁극의 맛을 추구하는 그만의 요리에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어머니의 ‘손맛’과 만난다.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 바닷가에서 그를 만나 요리철학과 인생, 그리고 가을에 개봉하는 다큐영화 ‘밥정’(情)에 대해 들었다.

<(주)하얀소 엔터테인먼트 제공>
◇거친 손바닥에 인생역정 담겨있어=“농사꾼 손 같습니다.”

(웃음) 풀도 뜯으러 다니고, 생선도 잡고, 설거지도 하고 닥치는 대로 합니다.”

그의 손바닥은 거칠었다. 험한 길을 헤치며 걸어온 연륜이 묻어나는 손이었다. 한편의 영화 같은 그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이 투박한 손에 고스란히 집약돼 있는 듯 싶었다. ‘산당’은 자연요리연구가인 임지호(65) 쉐프가 개펄 장어와 황태요리를 주로 하는 자연요리 식당 명이자 자신의 호이기도 하다. 산당 건물 주위와 내부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그가 만들고, 그린 작품들이었다. 그는 개인전을 20여 차례나 한 화가이기도 하다. 바깥에는 ‘시간의 흔적-나, 너, 우리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조각상이, 입구 카운터 벽에는 붉은 밥그릇에 황금 밥을 담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자연요리 연구가인 그가 ‘칼’과 함께 ‘붓’을 잡는 까닭이 궁금했다.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림의 목적이 ‘영혼의 쉼터’거든. 내 영혼이 쉬는 곳.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영혼이 들어가서 쉬는 곳입니다.”

‘임지호’나 ‘산당’이라는 이름을 기억 못하는 이들도 ‘방랑식객’이라고 하면 ‘아!’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간극장’을 비롯해 ‘방랑식객’,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등 다양한 방송매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인생과 자연요리가 꾸준하게 소개돼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연재료를 찾아 전국 곳곳을 떠돌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해주는 그에게 제작진들은 ‘방랑 식객’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요리란 물, 바람, 불, 빛을 담은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이다. 그 긴 시간과 광활한 공간 속에서 무르익어가는 삶이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 나의 요리였으며, 그것은 곧 자연 그 자체였다.”

세프 임지호가 지난 2011년 출간된 ‘방랑식객’을 통해 밝히는 요리의 정의다.

<(주)하얀소 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연요리’ 방송 타며 대중들의 사랑받아=그는 흔히 잡초라고 통칭해버리는 주변의 식물을 비롯해 이끼, 함초 등 자연에서 음식재료를 찾는다. 이런 과정에서 독초를 먹고 자리보전을 하는 등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풀을 연구하고, 배우며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자 사람들은 그를 ‘자연요리 연구가’라고 불렀다.

“내가 사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준비된 축복의 선물이에요. 땅이 주는 축복의 선물이 바로 주변에 나는 거에요. 내가 나를 온전하게 지키고, 이끌고 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힘은 주변의 것들입니다. 모든 건 독이 다 있어요. 그래서 삶아서, 욹어서, 삭혀서, 아니면 삶아서 말렸다가 다시 삶아서 제독(除毒)하고 법제(法製)를 해요. 우리 선조들이 깊은 학문적 성찰에 의해서 만든 ‘레시피’입니다.”

그는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한민족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자연을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 그것을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다. 그런데 갑자기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그러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트에서 가공식과 인스턴트 제품을 사먹는 편의 위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몸에 열을 만드는 음식’을 즐겨먹는 식습관은 아이들에게 아토피를 유발할 뿐이다.

그가 선보인 자연요리는 해외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 UN(국제연합) 한국 음식축제(2003년)를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 사찰음식 퍼포먼스(2004년), 독일 슈튜트 가르트 음식시연회(2005년), 일본 도쿄 긴자 한국의 자연요리 퍼포먼스(2008년), 터키 이스탄불 힐링푸드쇼(2013년), 미국 시카고 켄달컬리지 요리학교 초청강연(2017년) 등 많은 해외 행사에서 자연요리를 선보였다. 특히 2006년 미국 음식 전문잡지 ‘푸드 아트’(FOOD ARTS) 12월호에 표지모델과 커버스토리로 게재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7월 27~28일 이틀간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미팅때 황태절임 등 식단을 선보여 ‘밥상의 정치학’으로 화제를 모았다.

<(주)하얀소 엔터테인먼트 제공>
◇요리의 뿌리는 그리운 ‘어머니’에 닿아 있어=그는 195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손 귀한 집의 2대 독자’였다. ‘한의사로 일생을 청렴하게 산 선비’였던 아버지가 50대에 본 늦둥이였다. 위로 4명의 누나가 있었다. 12살에 ‘알 수 없는 역마살에 홀린 듯’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았다. 20대에 인생을 음식에 맡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식당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전국 산과 강으로 떠돌며 음식에 새롭게 눈을 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들로 ‘이 세상 최고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스무 살 때 고향집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를 낳은 생모가 세 살 때 친부에게 맡기고 돌아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였다. 이튿날 사고현장을 찾은 그는 눈물을 쏟았다. 그를 길러주었던 양어머니는 군복무중일 때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모두 여윈 20대 후반에는 열사(熱沙)의 나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000여명 노동자들의 식사를 총괄하는 총주방장으로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의 요리의 뿌리는 ‘어머니’에 닿아있다. 같은 책에서 “어머니는 내 모든 그리움의 근원이다. 아버지에게 세 살짜리 나를 맡기고 돌아서던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어머니. 그리고 일찍이 집을 나와 떠돌던 나 때문에 속앓이를 해야 했던 큰 어머니. 난 이 두 어머니에게 큰 빚을 졌다”고 밝힌다. 그 이후 그는 ‘낳아주고’, ‘길러준’ 두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그리워했다. 그런데 60살이 다 돼서야 ‘어머니는 내가 그리워하고, 계속 찾아나서는게 아니라 내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음식’으로 이어졌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에는 심장의 울림과 몸의 에너지가 들어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음식을 하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망각했기 때문에 재료는 풍부하지만 식탁은 빈곤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음식을 배터지게 먹어도 배가 고파요. 왜 그럴까? 바로 어머니의 심장의 울림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머니가 해준 음식에는 당신의 심장이 뛰는 심장박동이 들어가 있어요. 심장의 울림과 몸의 에너지가…. 음식의 본질은 바로 큰사랑에 있어요. 어머니가 그리울 때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사먹는 순간에 어머니가 해줬던 것을 느끼면 행복한 거예요.”

무엇보다 어린 시절, ‘밥 먹다시피 굶으며’ 밑바닥 생활을 겪었던 그에게 음식은 ‘배려’이고 ‘나눔’이다. 행복을 담아낸 접시가 빈 접시로 돌아올 때 그 역시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가슴으로 따뜻하고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한 그의 구도(求道)는 현재진행형이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어머니 향한 그리움으로 정성껏 차린 한상차림, 다큐영화 ‘밥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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