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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세 가지 다른 점
2020년 06월 12일(금) 00:00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이했다. 현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이 정신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일 터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것은 ‘사람 사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펼쳐는 언행을 보면 ‘껍데기 노무현 정신’만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족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강욱 의원(열린민주당 비례대표)에게는 축하 전화를 걸어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역할’을 당부했다.

평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각별했던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운영에 참여하면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정부는 네 시간 만에 “법을 만들겠다”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총선 압승으로 권력에 도취된 여권이 보수 몰락 이후 상식 밖의 ‘친문 사는 세상’ ‘특권과 차별이 있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회법에도 없는 ‘4+1 연대’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누더기 선거법인 연동형 비대표제를 관철시켰다. 그 후에 각종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고 총선 후에 통합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 가장 싫어했던 ‘원칙 없는 승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여 세력은 종종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 2기’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노·문 정부의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다르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실용적 진보’를 표방했던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교조적 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 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관철시켰다. 이라크 파병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도 밀어붙였다. 이 모든 것이 이념을 넘어 국익을 위한 실용적 행보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친문과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류 세력 교체와 체제 변혁을 핵심 목표로 삼으면서 ‘토착 왜구’ 등 이념으로 가득 찬 구호만 난무했다.

둘째, 노무현 정부에서는 ‘협치 실천’이 돋보였던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협치 절벽’이 지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사학법 개정으로 정국이 경색되자 청와대로 초대한 여당 원내대표에게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양보 좀 하시죠”라면서 통 큰 정치를 주문했다. 2005년 8월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177석의 슈퍼 여당인 민주당은 53년 만에 21대 국회를 사실상 단독 개원했고, 그동안 야당 몫으로 지정된 국회 법사위원장마저 차지하겠다면서 원 구성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양보는 힘없는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여당이 하는 것이 상식이다. 야당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진영의 논리에 갇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 협치와 공존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셋째,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원리로 당·정 분리를 강조했다. 따라서 청와대와 집권당 간에 수평적인 관계가 구축되면서 겸손한 권력이 만들어졌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정 일치가 강조되면서 청와대가 집권당을 수직·통치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는 강제 당론을 통해 의원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있다. 정당 민주화는 퇴보하고 대신 오만한 권력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부 여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코로나 국난 극복의 생산적 정치를 위해 ‘실용 강화 원칙과 상식’ ‘행동하는 협치’ ‘당정 분리’라는 ‘노무현 국정 운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언컨대 국정 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집권 세력의 제도적 자제와 관용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