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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마을과 퍼스트 펭귄
2020년 06월 03일(수) 00:00
[박홍근 포유건축 대표]
오래된 단독 주택 지역의 공동화는 전국적 현상이다. 광주 양림동,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2011년 남구청은 양림동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양림 2지구 주거환경 개선사업 정비구역’을 지정했다. 정비구역 지정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원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양림오거리에 인접한 곳을 어린이공원으로 지정했다. 당시 면적은 3835㎡이었다. 어린이공원 내에는 점포나 편의시설 등이 들어갈 수 없다. 이곳의 모든 옛 주택들은 어린이공원이 조성되면 철거될 운명이었다. 당연히 부지는 공공이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

이 지역은 이런저런 이유로 빈집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골목 안 빈집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방치된 빈터는 흉한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다. 동네 주민 한 분(현 펭귄마을 김동균 촌장)이 앞장서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치우고, 정리하면서 주변의 잡동사니를 예쁘게(?) 꾸몄고, 비어 있는 공간은 텃밭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2013년 5월부터라고 한다.

텃밭에서 재배한 갖가지 농작물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었다. 이곳에 이름이 붙었는데,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어느 마을 주민의 걷는 모습이 흡사 펭귄같이 귀엽다고 하여 ‘펭귄 텃밭’이었다.

사용되지 않는 생활용품과 버려진 물건들은 빈집이 늘어날수록 많아졌다. 꾸미는 공간이 골목으로 확장되었고, 담장 벽면과 골목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연스레 ‘펭귄 마을’이라 불리었다. 텃밭에서 골목으로, 마을로 확장된 것이다.

이런 풍경은 SNS를 통해 조금씩 입소문이 났고, 옛 추억을 기억하는 중년들, 이미 있었던 것이지만 신세대에게는 새로운 것, 독특한 체험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트렌드에 부합하였다. 골목 투어의 유행과 더불어 이슈화되기 시작됐는데, 2015년 초의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양림동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늘의 ‘펭귄 마을’이 되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당연히 펭귄 마을에는 펭귄이 살지 않는다. 다만 ‘퍼스트 펭귄’은 있다. 필자는 마을 촌장을 그리 생각한다. 퍼스트 펭귄은 선구자 또는 도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어로, 남극의 펭귄들이 사냥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펭귄 한 마리가 먼저 용기(?)를 내 뛰어들면 무리가 따라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퍼스트 펭귄의 진정한 의미는 도전 정신이다. 자의 반 타의 반, 먼저 시도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골목과 주변을 선도적으로 가꾸는 촌장이 없었다면 오늘의 광주 자산인 펭귄 마을은 없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무언가 먼저 행동하고 변화를 유도하며,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퍼스트 펭귄에 비유하고 싶다.

펭귄 마을과 영역이 겹치는 어린이공원은 이후 부지 활용이 자유로운 ‘문화공원’으로 변경되었다.(문화공원은 어린이공원과는 달리 공원 내에 점포, 전시, 편의시설 등의 설치가 가능하다) 기존 20여 채의 건물들을 거의 존치하면서 개축, 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공원은 공예 예술인들의 창작과 판매 공간이 되었다.

퍼스트 펭귄인 촌장에 의해 마을 텃밭으로 시작하여 골목으로 확장되었지만, 이젠 공공과 많이 사람들이 참여하고, 골목과 골목이 연결되고, 마당과 광장이 만들어졌다. 광장 주변 높은 곳은 전망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졌고, 옥상에 오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확장되었다. 보행자 눈높이에서만 보던 것을 새가 볼 수 있는 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만들어졌다. 이곳은 여러 체험과 추억을 간직한 사진 찍기, 기억이 가능한 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유기체처럼 펭귄 마을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양림동 펭귄 마을이 한 사람의 선도적 노력으로 시작은 되었지만, 이후 주민들과 공공이 함께하여 골목으로, 주변으로 더 확장되어 광주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처럼 우리도 각각의 분야에서 퍼스트 펭귄 같은 생각과 실천 정신을 되새겨 볼 만하다. 이를 통해 도시 재생과 삶의 지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