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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국회’ 이번엔 실현될까
2020년 05월 20일(수) 00:00
4·15 총선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임기가 열흘 후인 오는 30일부터 시작된다.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을 심의하는 국회의원들을 흔히 ‘선량’(選良)이라고 부른다. ‘가려 뽑힌 뛰어난 인물’이라는 의미로, 존경과 기대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들을 언제부터 이렇게 불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유래는 중국 한(漢)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지방 군수가 관리를 선발하여 조정에 천거했는데 이렇게 뽑힌 사람을 선량이라고 했다 한다. 선발 기준은 효렴(孝廉)과 현량방정(賢良方正)이었다. 글자 그대로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하며, 경학에 밝고 품성이 어질며 행동이 방정한 사람을 뽑은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숨은 인재 발굴을 위해 조광조 등의 건의로 신설된 현량과(賢良科)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제도 역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관리를 선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처럼 선량은 한때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을 가리키다 현대에 이르러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21대 국회와 그 구성원인 선량들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것은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총선 투표율(66.2%)에 잘 투영돼 있다. 이는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엉망이었던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당제 구도로 출발한 20대 국회에서 여야는 지난 4년간 끝없이 충돌과 대립을 거듭했다. 견제와 균형, 타협과 절충의 정치를 기대했건만 몸싸움이 난무하는 ‘동물 국회’, 보이콧과 파행을 거듭하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식물 국회’를 오가더니 끝내 결실 없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 여파로 무려 1만 5200여 건의 법안들이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처지다. 이는 20대 국회 전체 발의 법안(2만 4000여 건)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로, 역대 최다이다. 공들여 만든 법안들이 제대로 된 심사 한 번 받지 못하고 무더기로 사장되는 것이다. 이러니 ‘놀고먹는 국회’ ‘선량이 아니라 한량(閑良)’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하겠다.



의원 특권부터 내려놓고



여야는 막판 ‘유종의 미’를 거두자며 오늘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처리 법안은 100여 건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여태껏 처리하지 못한 법안 중에는 민생 법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부족한 의사 수를 늘려 공공 의료를 강화하는 공공 의대 설립 법안, 특수 고용직과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 혜택을 주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한국형 뉴딜정책 관련 법안 등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법이 대표적이다. 30여 년 만에 추진되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등 자치 분권 강화를 위한 법안들도 여러 건 있다.

사장(死藏) 위기에 놓인 광주·전남 지역 주요 현안과 관련된 법안들도 수십 건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방·왜곡·날조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들의 처리 역시 지연되고 있다. 그러니 광주 한복판에서 오월의 진실을 폄훼하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것이다. 여순사건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도 발의 이후 3년째 통과되지 못했다. 이들 법안들이 폐기되면 21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부터 모든 절차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임기 말 법안의 무더기 폐기가 반복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본업인 입법 활동은 뒷전인 채 당리당략과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한 탓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국회가 들어설 때마다 핵심 개혁 과제로 ‘일하는 국회’가 가장 먼저 꼽히곤 하지만 매번 헛구호에 그쳤다. 따라서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려면 국회법 개정을 통한 제도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매월 임시국회를 여는 등 ‘상시 국회’ 시스템을 도입하고, 상임위원회 운영도 의무화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참하면 수당도 삭감해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역시 국민적 요구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국회의원에게 부여되는 헌법상 불체포·면책 특권을 국민이 직접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제’를 내건 바 있다. 청렴과 국가 이익 우선, 지위 남용 금지 등 헌법상 의무를 위반하면 선거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의원직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은 탄핵소추권으로,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주민소환제로, 견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유독 국회의원만 임기 중 국민이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요구에는 21만여 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다행히 21대 국회 거대 양당의 첫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협치를 통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였던 국회를 진정 국민에게 신뢰받는 ‘민의의 전당’으로 탈바꿈시키려면, 민주당과 초선 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당은 엊그제 더불어시민당과 합당을 통해 177석의 ‘슈퍼 여당’으로 재탄생했다. 범여권까지 포함하면 개헌안 의결만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국회에서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회 문화를 바꾸고 정치 선진화를 이루는 것 역시 앞으로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초선들 새바람 기대한다



여의도에 갓 입성한 의원들의 행보도 중요하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 중 절반이 넘는 151명이 초선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색인 광주·전남의 경우 당선인 18명 중 13명이 초선으로 그 비율이 더욱 높다. 유권자들이 경험 많은 다선 의원들 대신 정치 신인들을 선택한 것은 개혁과 쇄신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회 활동에서 구태를 혁파하는 새바람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한다. ‘금배지만 달면 총기(聰氣)가 사라지고 도덕성도 흐려진다’는 비아냥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이 지역 당선자들은 또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강제 조사권을 부여하거나 5·18 왜곡을 처벌하는 입법을 통해 5·18의 완전한 진상 규명을 앞당기고, 호남 정치 복원과 지역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 주었으면 한다. “작은 정치인(politician)이나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큰 정치인(statesman)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당선 소감에 담겼던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정한 선량들을 보고 싶다.



/논설실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