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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생각’] 모든 건강한 생명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2020년 03월 19일(목) 00:00
나무들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렇다. 어릴 때에 나무는 작고 여린 몸을 서로 의지해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서라도 바투 붙어서 자라지만, 일정한 크기로 자란 뒤라면 제가끔 자신의 생존 영역이 확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지를 펼칠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느티나무나 후박나무 또는 팽나무처럼 가지를 넓게 펼치는 나무들에게 일정한 거리는 필수적인 생장 요소다.

이 때문에 다양한 나무가 빽빽이 모여 살아가는 공간인 숲의 나무는 너른 공터에서 홀로 자라는 나무에 비해 평균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마을 어귀에 홀로 서 있는 정자나무는 5백 년을 훌쩍 넘기며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숲의 나무들은 평균적으로 2백 년에서 3백 년 정도 사는 게 고작이다.

물론 자연의 모든 현상이 그렇듯 상례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말 천연기념물 제558호로 지정한 경북 문경 장수황씨 종택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4백 년을 넘게 자란 탱자나무가 그런 경우다.

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탱자나무이며, 흔히 생울타리로 키우는 것과 달리 정원수로 키웠다는 점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다. 이 탱자나무는 무척 크고 아름다운 수형을 가졌다. 나무가 이처럼 잘 자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면서 한 번쯤 놀라게 되는 사실이 바로 그들이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라는 것이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한 그루로 보이지만, 실은 두 그루가 바짝 붙어서 자란 것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이토록 가까이 붙어서 자라는 건 식물의 입장에서 매우 힘겨운 일이다. 둘 사이의 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동쪽의 나무는 다른 한 그루의 나무에 막힌 서쪽으로 가지를 뻗지 않았다. 서쪽의 나무도 마찬가지로 상대 나무가 없는 쪽으로만 가지를 뻗으며 살았다. 가운데로 뻗어야 할 가지는 상대 나무를 피해 위로 뻗으면서 유난스레 더 높이 솟구쳐 올랐다. 나무의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이같은 결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장수황씨 종택에서 삶을 이어온 후손들이 지난 4백 년에 걸쳐 나무를 애지중지 보살핀 덕임이 분명하다. 사람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토록 가까이 붙어서 산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고, 진작에 나무는 생명을 잇지 못했으리라.

모든 나무가 그렇다. 일정한 거리는 필수다. 그래서 숲을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정하게 베어 내는 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생육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나무들은 생존 스트레스로 살지 못한다. 일정하게 나무를 베어 내 나무들 사이의 거리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른바 간벌이다.

간벌을 통해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나무는 햇살을 움켜쥐기 위해 더 빠르게 성장하며 이전보다 더 울창한 숲을 이룬다. 게다가 생명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상처는 오히려 더 큰 생명 욕구를 자극하게 되고, 그 자극은 보다 건강하고 울창한 생명의 숲으로 거듭나는 촉매가 된다.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가 이즈음의 화두다. 자연스레 일정한 거리 없이 지나칠 정도로 바투 붙어 살아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때다. 아침이면 옴짝달싹할 틈도 없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온몸을 부대끼며 출근해서, 닭장처럼 작은 칸막이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대중교통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 끼어 지친 몸으 집으로 돌아오는 게 도시에서의 사람살이다. 그 안에 생명이 생명답게 살 수 있는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숙주로 하는 미생물이 숙주와 숙주를 쉽게 옮겨다니며 생존 영역을 확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바이러스들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갑작스러운 ‘거리 두기’는 필경 불편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무가 그렇듯이 잠깐의 불편함은 지나치게 밀집하여 살아가는 우리 삶을 더 건강하고 더 활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중차대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떤 과학자의 이야기대로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