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는 가운데 감염병과 재난을 다룬 문화 콘텐츠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소설과 영화에서 다뤘던 작품들이 소환되면서 작품 속의 배경과 사태를 오늘의 상황과 비교하는 독자와 관객들이 늘고 있다. 감염과 재난은 속성상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많은 그만큼 파급력이 높다.

전염병은 서사 전개가 자유로운 소설에서 흥미롭게 다뤄온 소재다.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감염병을 모티브로 소설이 창작돼 왔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장르의 확장과 더불어 기존에는 소재로 삼지 않았던 의료, 미생물, 바이러스 등 분야에까지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근거지로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 사태를 다룬 소설이 있어 화제다. 약 40년 전 오늘의 우한 사태를 예언한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은, 현재 감염병의 전개 양상과 유사한 면이 있어 섬짓하다. 스틸러 거장 딘 쿤츠가 1981년 펴낸 ‘어둠의 눈’이 바로 그것. 작품은 현재의 여러 루머 가운데 하나인, 생화학 무기연구소에서 감염병이 유출됐다는 것과 같은 패턴이다. 우한시 외곽에 자리한 무기 연구소에서 신종 바이러스 ‘우한-400’이 유출되면서 세계로 퍼진다는 게 줄거리다.

문학출판계에 따르면 국내에 아직 번역은 안됐지만 작금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어 우연의 일치치고는 기막힌 작품이라는 평이다.

감염병을 다룬 대표 소설로 카뮈의 ‘페스트’를 꼽는 이들이 많다. 프랑스의 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 ‘페스트’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실제 사건을 취재해 썼으며, 여기에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당시 시대적 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어느 날 알제리의 해안도시에 쥐들의 사체가 발견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류를 하던 이웃이 죽어나가면서 상황은 심각하게 변한다. 시민들은 뜬소문(요즘으로 치면 가짜뉴스)에 휘둘리며 병을 이겨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계엄령으로 도시가 폐쇄되자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코로나 확산과 맞물리며 ‘페스트’ 판매량이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가까이 급증했다. 현재 문학출판 시장에는 문학동네, 민음사, 열린책들 등에서 나온 20여 종이 판매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전염병을 소재로 했다.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실명 전염병’이 돈다. 원인을 모르는 당국은 실명한 이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며 탈출하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린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는 함평 출신 정유정의 작가의 ‘28’을 빼놓을 수 없다.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에서 펼쳐지는 28일간을 그린 소설은 생존에 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소설은 병에 걸린 개에 물려 이상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들을 구하려는 구조대원들마저 괴질에 걸리자, 당국은 서울을 포함한 다른 곳으로의 감염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한다.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편혜영의 ‘재와 빨강’ 또한 전염병과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편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서늘한 문체와 잘 어우러져 소통 부재의 현실을 실감나게 그렸다. 책은 폴란드 문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16 올해의 책’에 선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 배영익의 ‘전염병: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 중국의 반체제 작가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도 감염병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영화 '컨테이젼'

영화 ‘컨테이젼’, ‘감기’ 등 전염병 소재를 다룬 재난 영화들도 입소문을 타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감 증상과도 같은 발열과 기침 등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과 치료 약도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바이러스, 치료를 요구하며 병원 앞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과 부족한 병상 수, 퍼지는 음모론과 이 틈을 타 사기를 치는 자들까지. 그리고 마침내 바이러스의 숙주로 밝혀지는 박쥐.

2011년 국내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의 내용이다. 국내 개봉 당시 22만여 관객에 그친 이 영화가 뒤늦게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놀랍도록 닮아서다.

영화는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로 시작한다. 기침의 주인공은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글로벌 기업 임원 베스(귀네스 펠트로 분). 베스는 고열 등에 시달리다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아들마저 죽는다.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는 질병의 이름조차 모른 채 격리된다.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곧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을 감염시킨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와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즐릿) 등은 바이러스를 조사하기 시작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오랑테스 박사(마리옹 코티야르)는 홍콩과 마카오에서 최초발병경로를 추적한다.

영화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를 누비고 공공장소의 문손잡이 등을 만지는 장면을 부각하면서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준다. 일반 감기인 줄 알고 마스크를 하지 않아 삽시간에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모습과 “접촉을 통한 감염이므로 얼굴을 만지지 말라”고 하는 미어스 박사의 말 등은 코로나19의 전파 양상 그리고 예방 수칙 등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러스의 강한 전파력과 병상 부족 사태 역시 현실과 닮아있으며 개나리약으로 사기를 치는 앨런은 불량 마스크를 판매하는 일부 판매자들과 흡사하다.

영화 '감기'

2013년 개봉한 한국 영화 ‘감기’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비슷한 호흡기 질환을 다룬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호흡기를 통해 초당 3.4명이 감염되고 치사율 100%의 변종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자 정부는 군대 등을 동원해 도시를 폐쇄한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구분 없이 모두 격리되자 사람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이 밖에도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숙주로 삼고 뇌를 조종해 익사시킨다는 내용을 다룬 ‘연가시’(2012)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도 호흡기 질환은 아니지만, 다른 전염병을 다뤄 눈길을 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