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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과 울고 웃고 12년 행복했습니다”
[퇴임한 ‘소록도 지킴이’ 박형철 소록도병원장]
근무 자청해 역대 최장 근무 … 주거 개선·학습공간 조성 등
100년 사업 성공 추진…“역사 보존해 교육현장 활용해야”
2020년 01월 29일(수) 00:00
‘소록도 지킴이’ 박형철(59) 소록도병원장이 지난해 말 조용히 명예퇴직했다.

박 원장은 2007년 부임 이래 무려 12년 2개월 동안 한센인과 고락을 함께했다. 소록도 10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근무한 원장이다.

박 원장은 광주시 동구보건소장을 퇴직한 뒤 자청해서 소록도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록도병원은 국립병원이지만 사실상 근무를 자청하는 의사는 드물다. 그는 재임기간 소록도 100년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고,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한센인들의 행복한 삶을 꿈꿨다. 한센인과 비한센인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없애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박 원장은 2009년부터 소록도 내 노후 주거 공간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1930년대 지어진 낡은 목조건물 300여동을 8년여에 걸쳐 90% 가까이 보수했다. 1개동을 수리하는 데 1000만여원이 드는 만큼 병원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박 원장은 국회를 수차례 직접 찾아가며 예산을 확보했다.

박 원장은 군의 협조를 받아 한센인을 위한 학습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노래교실, 댄스교실, 컴퓨터 프로그램 등 동호회 형식으로 진행되는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이밖에 소록도병원 개업 100주년을 맞은 2016년, 소록도 역사를 오롯이 보존하는 한센병 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지난 2016년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소록도가 한센인의 힐링은 물론 외지인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동행(同行)의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또 많은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섬이자 함께 공존하는 평화의 장소’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소록도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선 외지인들의 잘못된 상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신종 질병이 등장할 때마다 잘못된 상식이 세간에 퍼지면서 차별과 인권의 문제로 번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메르스 사태 때 의료진 가족까지 감염자 취급을 하며 따돌림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 원장은 평소 입버릇 처럼 소망을 말했다고 한다. “다시는 질병으로 인한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인권향상이 됐으면 좋겠다. 또 한센의 역사가 서린 소록도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기억의 공간이자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박 원장의 퇴임식은 지난해 12월 30일 열렸다. 소록도 병원 관계자는 “늘 환자 입장을 대변하는 분이었다. 환자 의견을 듣고 민원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 직원 입장에선 힘들기도 했다”며 “퇴임식에서도 ‘내가 간 후에도 환자들을 위해 맡겨진 일을 잘 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