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김지하, 조태일, 최하림, 이성부, 송수권, 고정희, 황지우, 곽재구, 나해철 등….

이들은 지역을 넘어 한국 문학을 풍성하게 일궜던 남도를 대표하는 시인들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역사에서 반드시 거명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는다. 독자들 또한 이들의 등단작을 비롯한 대표작 한두 작품은 알고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한국 현대시 100년을 관통하는 100인의 등단작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왼쪽부터 조태일 시인, 송수권 시인, 황지우 시인, 곽재구 시인

국내 최초 시(詩) 큐레이션 앱인 ‘시요일’이 가려 뽑은 시선집 ‘시인의 시작’(미디어창비)은 현대시 100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시요일’은 출판사 미디어창비에서 제공하는 시 큐레이션 서비스다. 시인들이 직접 엄선한 시를 배달하고 추천하는 기능 등이 있으며 고시조부터 현대대표시에 이르는 4만3000여 점의 시가 수록돼 있다.

이번 작품집에는 모두 100명의 시인 100개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무엇보다 선집은 등단 연도의 역순으로 시가 수록돼 있어 오늘의 시각에서 과거 100년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2019년 등단 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성다영을 비롯해 1920년대 김소월에 이르기까지 아우른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의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은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영랑의 등단작이다. 강진 출신의 김영랑은 이 시를 계기로 ‘영랑시집’, ‘영랑시선’ 등을 간행하는 등 남도 서정에 현대적 감수성을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태일의 ‘아침선박’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작이며, 최하림의 ‘빈약한 올페의 회상’ 역시 1964년 같은 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다.

1981년 중앙일보 당선작인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막차를 기다리는 서민들의 애환을 통해 시대의 우울함과 삶의 연민을 그렸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인 그리움과 남도의 한의 정서를 세련된 언어와 감수성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등단작은 시인의 문학적 역량 뿐 아니라 문학을 지향했던 시인들의 설렘과 ‘첫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2020년 오늘의 관점에서 지나온 100년의 시와 향후 100년의 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이번 시집에는 김소월, 이용악, 백석, 오장환, 윤동주, 박목월, 박두진 등 우리 현대시사에서 ‘전범’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뛰어난 시를 썼던 시인들의 등단작도 담겨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로 시작되는 윤동주의 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서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시인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

이밖에 책에는 강은교, 정호승, 김혜순,기형도, 허수경, 안도현, 이문재, 함민복 등 독보적인 시 세계를 열어왔던 시인들의 등단작도 만날 수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