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기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촛대를 수집해왔다. 시작은 1980년대 초 베를린대학에 연구교수로 가 있던 때였다. 베를린 벼룩시장에서 만난 촛대 하나가 외로움에 지쳐 있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때의 마음은 당시 메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따뜻하고 정다운 것들은 모두 내게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고 고독한 밤이면 나는 이 작은 촛대에 노란색 초를 꽂고 불을 댕겼다. 어김없이 촛불은 온화한 빛으로 내 주위를 감쌌다.”
1987년 독일 프라이브르크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며 본격적으로 주말이면 베낭을 메고 촛대 사냥에 다녔다. 성당, 대학, 박물관, 가정집 등 ‘역사를 초월한 인간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이후 해외여행을 갈 때면 꼭 벼룩시장에 들러 촛대를 구입했고, 촛대를 수집한다는 입소문 덕에 지인들도 그에게 촛대를 선물하곤 한다. 세 들어 살던 독일인 집주인도 그에게 촛대를 선물해줬다.
독일, 스위스, 남미, 인도 등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모은 촛대는 500여종에 달하고 촛대를 수집하다 보니 촛대와 어울리는 ‘공간’을 꾸미고 싶어 수집한 맥주잔, 꽃병 등도 꽤 많다. 주변에 소문이 나면서 광주와 인천, 대구 등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촛대 100여종이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전시회 ‘촛대 그리고 황톳길’은 사직공원 관덕정 앞에 문을 연 황톳길 사동(광주시 남구 중앙로 110번길 29-4)에서 진행중이다. 사진작가 최옥수씨가 운영하는 황톳길은 동명동 골목길, 정원 딸린 가정집에 문을 연 이후 개성있는 먹을거리와 전통차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공간이다. 몇년 전 중앙도서관 앞에 지점을 냈고 사동점은 지난해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사동에서도 기존 황톳길에서와 똑같은 음료와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
황톳길 사동은 낡은 가정집을 개조해 문을 열었다. 입구는 아주 좁은듯하지만 지하까지 갖추고 있는 공간은 의외로 넓다. 촛대가 생활 속에서 직접 ‘쓰일 때’ 그 빛을 발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전시는 맞춤한 인테리어처럼 공간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번 전시는 광주 촛대 전시회 당시 작품 사진을 찍었던 최옥수 작가와의 인연도 한몫했다.
촛대는 단순히 초를 꽂아 불을 밝히는 실용적인 용도 뿐 아니라 재료, 형상, 장식, 색감까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이다. 전시작들 역시 청동, 돌, 유리, 철, 자기, 나무, 은 등 다양한 소재와 문양이 어우러져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촛대들은 공간을 활용해 전시중이다. 푸른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창가에 나란히 놓인 10여개의 촛대는 다채로운 조형미를 자랑한다. 각각의 탁자에 놓인 촛대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한 리스 옆에 놓인 촛대는 소박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수호신처럼 놓여 있는 돌 촛대도 인상적이다. 따뜻한 차 한잔 나누며 촛대의 매력에 빠져보기 좋은 전시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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