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로비에 개업식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만국기가 펄럭인다. 전시 제목은 ‘와신짬뽕’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정까지 닿는 거대한 젓가락이 설치미술처럼 놓여 있고 관람객이 만나는 첫 그림은 산수화와 어우러진 ‘짬뽕’이다. 물감, 붓, 책, 화첩, 스케치 작품 등 아카이브 자료를 접시와 도마 위에 펼쳐 놓은, 마치 ‘주방’처럼 꾸민 코너도 재미있다. ‘음식산수’를 그려온 하루.K(본명 김형진) 작가 초대전에 맞춤한 컨셉이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은 매년 한명의 청년 작가를 선정해 기획전을 연다. 올 초대전인‘기묘한 식객 하루 K-와신짬뽕’전(2020년 2월 23일까지)에서는 평면, 입체, 영상, 설치 등 26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는 흥미롭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하듯 즐기는 재미가 있다.
정통산수화 느낌의 작품 속에 다양한 음식이 들어있다. 국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달걀 후라이가 바위 위에 걸쳐 있기도 하다. 때론 이 모든 게 ‘도시락’에 담기기도 한다. 산수화와 음식이 어우러진 ‘맛있는 산수’로 알려진 하루.K 작품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이건 작가에게 득이기도 하지만, 독이기도 하다.
“조금은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신장개업’ 컨셉으로 전시회를 꾸몄어요. ‘와신’은 ‘바꾸며 조금씩 나아간다’는 뜻이예요. 제 정체성인 음식산수를 부정할 순 없지만 늘 변화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동양화 전통은 지켜가되, 재료나 소재면에서 실험을 통해 관람객들이 좀 더 재미있게 동양화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작업을 보고 행복해지고 유쾌해지면 좋겠어요. 개그적 느낌도 넣어 더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웃음).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풋’하고 웃을 수 있도록요.”
홍익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서른 즈음인 2009년 광주로 내려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어서다. 이때 ‘하루의 삶의 태도가 한달의 삶, 일년, 일생의 삶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성실하게 살자’는 의미로 하루 K라는 예명을 지었다. 운좋게 의재미술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된 그는 이때부터 인물과 나무 그리는 법 등 기초부터 ‘내 작품을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동양화 전공자들이 고민하는 게 있어요. 제 또래의 대중들은 동양화, 특히 산수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산수화를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동양화가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정신’에 무게를 두죠. 하지만 ‘정신’만으론 살 수 없고 ‘물질’을 간과할 수는 없어요. 현대적인 이상향은 물질과 정신의 결합이라고 봤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에서 나온 게 바로 음식이예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고,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특성이 정신과 대비되는 ‘물질’이라는 속성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죠.”
첫 작품은 2012년 향토음식박물관 기획전에 내놓은 ‘식탁 위 그릇 위에 산을 올려 놓은’ 그림이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대중이 산수화를 먹기 시작했어.”라고. 그는 좀 더 ‘다양한 상차림’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맛있는 산수’ 시리즈가 시작됐다.
“산수와 음식이 한 화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통해 재밌고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데 어느 순간 산수가 가진 느낌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복재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생겼어요. 이때 곳곳으로 스케치를 떠나 돌파구를 찾았죠. 이 때 채집한 소재들을 새로게 ‘편집’했고, 도시락이 등장하는 ‘편집된 산수’ 시리즈가 시작됐어요.”
대규모 초대전을 준비한 올해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했다. 평면 작품은 입체화되고, 사진이되고, 조각이 됐다.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작업하던 데서 벗어나 유화 작업도 진행했다. 9m 대작 ‘rainbow moodeung mountain’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무등산’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산수에 담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면 재료는 상관하지 않는 편이라 강하고 화려한 색감을 쓰고 싶어 유화물감을 쓰고, 어릴 적 누구 집에나 있었던 ‘밍크 담요’로 무등산을 표현했다. 또 작품의 이미지를 물질화, 입체화시키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밖에 동양화의 정물화를 재해석한 ‘그림 속 그림’ 시리즈, 지역 가수 ‘물소’의 랩·음악과 콜라보작업인 영상물도 전시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나무와 바위 등 산수화 소재를 3D프린터로 출력해 입체화시키고 나무, 사람 등 미니어처를 배치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이 새로운 공간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재미있겠다 싶어 사진 촬영을 했고,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인기 높은 ‘짤’처럼 제작했죠. 새롭게 시작한 작업들이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소소한 것들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잘 만들어내는 동료 작가”로 “이번 전시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하고, 응원한” 아내 임현채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지난 2013년 산세계미술제 대상을 수상했고, 임작가는 올해 우수상을 받았다. 개막식은 20일 오후 5시 열리며 오후 3시부터는 미술평론가 양초롱씨와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정통산수화 느낌의 작품 속에 다양한 음식이 들어있다. 국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달걀 후라이가 바위 위에 걸쳐 있기도 하다. 때론 이 모든 게 ‘도시락’에 담기기도 한다. 산수화와 음식이 어우러진 ‘맛있는 산수’로 알려진 하루.K 작품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이건 작가에게 득이기도 하지만, 독이기도 하다.
“조금은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신장개업’ 컨셉으로 전시회를 꾸몄어요. ‘와신’은 ‘바꾸며 조금씩 나아간다’는 뜻이예요. 제 정체성인 음식산수를 부정할 순 없지만 늘 변화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동양화 전통은 지켜가되, 재료나 소재면에서 실험을 통해 관람객들이 좀 더 재미있게 동양화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작업을 보고 행복해지고 유쾌해지면 좋겠어요. 개그적 느낌도 넣어 더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웃음).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풋’하고 웃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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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서른 즈음인 2009년 광주로 내려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어서다. 이때 ‘하루의 삶의 태도가 한달의 삶, 일년, 일생의 삶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성실하게 살자’는 의미로 하루 K라는 예명을 지었다. 운좋게 의재미술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된 그는 이때부터 인물과 나무 그리는 법 등 기초부터 ‘내 작품을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동양화 전공자들이 고민하는 게 있어요. 제 또래의 대중들은 동양화, 특히 산수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산수화를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동양화가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정신’에 무게를 두죠. 하지만 ‘정신’만으론 살 수 없고 ‘물질’을 간과할 수는 없어요. 현대적인 이상향은 물질과 정신의 결합이라고 봤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에서 나온 게 바로 음식이예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고,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특성이 정신과 대비되는 ‘물질’이라는 속성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죠.”
첫 작품은 2012년 향토음식박물관 기획전에 내놓은 ‘식탁 위 그릇 위에 산을 올려 놓은’ 그림이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대중이 산수화를 먹기 시작했어.”라고. 그는 좀 더 ‘다양한 상차림’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맛있는 산수’ 시리즈가 시작됐다.
“산수와 음식이 한 화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통해 재밌고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데 어느 순간 산수가 가진 느낌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복재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생겼어요. 이때 곳곳으로 스케치를 떠나 돌파구를 찾았죠. 이 때 채집한 소재들을 새로게 ‘편집’했고, 도시락이 등장하는 ‘편집된 산수’ 시리즈가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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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초대전을 준비한 올해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했다. 평면 작품은 입체화되고, 사진이되고, 조각이 됐다.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작업하던 데서 벗어나 유화 작업도 진행했다. 9m 대작 ‘rainbow moodeung mountain’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무등산’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산수에 담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면 재료는 상관하지 않는 편이라 강하고 화려한 색감을 쓰고 싶어 유화물감을 쓰고, 어릴 적 누구 집에나 있었던 ‘밍크 담요’로 무등산을 표현했다. 또 작품의 이미지를 물질화, 입체화시키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밖에 동양화의 정물화를 재해석한 ‘그림 속 그림’ 시리즈, 지역 가수 ‘물소’의 랩·음악과 콜라보작업인 영상물도 전시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나무와 바위 등 산수화 소재를 3D프린터로 출력해 입체화시키고 나무, 사람 등 미니어처를 배치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이 새로운 공간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재미있겠다 싶어 사진 촬영을 했고,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인기 높은 ‘짤’처럼 제작했죠. 새롭게 시작한 작업들이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소소한 것들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잘 만들어내는 동료 작가”로 “이번 전시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하고, 응원한” 아내 임현채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지난 2013년 산세계미술제 대상을 수상했고, 임작가는 올해 우수상을 받았다. 개막식은 20일 오후 5시 열리며 오후 3시부터는 미술평론가 양초롱씨와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