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속담 중에 ‘남이 장에 가니까 씨오쟁이 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뚜렷한 목적 없이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 그러한 양상이 적지 않다.
“자본에 섬을 입맛대로 요리하게 맡길 게 아니라 재래종 씨앗을 받아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이십대 초반 격렬했던 소작쟁이의 뜨거운 기억을 품고 암태도를 찾았다가 섬에 매혹됐다. 바로 김준<사진>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섬 같은’ 사람이다. 순수해 보이는 표정 이면에 우직하면서도 올곧은 면을 지니고 있다. 섬문화 답사를 책으로 엮어내게 된 것은 지난 2012년부터. 당시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기치로 여수 엑스포가 열리면서 섬의 가치를 조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초 이번 ‘진도, 제주 편’은 2014년 무렵 초고가 끝난 상태였다.
“섬 문화는 씨앗과 같습니다. 섬을 걷고 주민을 만나고 그들 삶을 기록하는 것은 생태와 문화 속에서 얻어낸 지혜를 씨오쟁이에 담아주려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 씨오쟁이에서 섬 소설을 꺼낼 것이고, 누군가는 시를 꺼내고, 또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그릴 것입니다. 각자 재능대로 섬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천혜의 해안을 거느린 전남은 블루 이코노미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지난 8월 목포와 신안에서 개최된 ‘만남이 있는 섬, 미래를 여는 섬’ 행사에는 약 15만 여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보통 사람들은 신안, 진도, 완도, 제주도도 그렇지만 ‘그 섬이 그 섬이다’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많이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고 공감해야 ‘다름’이 지켜지죠. 비슷함을 찾다보니까 비슷한 형태로 바뀌는 게 아닐까요.”
그는 섬사람들 문제라기보다 “섬에 가는 사람들 시각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섬 특유의 환경, 일테면 음식이나 문화 등을 존중하고 공감해야 섬 주민들의 자존감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육지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요구를 하다보니 결국 섬이 ‘붕어빵’처럼 변하게 됐다는 논리다.
현재 진도 본섬을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은 “새떼처럼 조도면에 모여 있는 형국”이다. 한 면에 35개 유인도와 119개 무인도 등등 모두 154개가 모여 있다.
김 실장은 “좁은 공간에 많은 섬이 분포한 것은 단연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다. 섬만 많은 것이 아니라 관매도, 주지도, 양덕도, 혈도, 병풍도 등 그 모양새가 아름답다. 베트남에 하룽베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조도 군도가 있다”며 “대부분 바위섬이다. 바위가 많으니 땅은 얼마나 척박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부근은 물살이 거칠기로는 여느 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명량해전의 울돌목, 장죽수도, 맹골수도, 거차수도 등 모두 조류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거친 바다가 고통과 아픔만을 주지 않는다며 웃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섬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운명을 삶으로 바꾼 것은 섬사람들이다. 씻김굿, 들노래, 아리랑, 다시래기 등 진도의 민속과 소리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진도 미역이나 멸치가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거센 물살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일찍부터 진도 사람들은 “바위에 붙은 돌미역에 의지해” 삶을 꾸렸다.
저자는 화산섬을 일구며 삶을 이어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도 소개한다. “1만 2천 신이 사는 제주”에도 육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들만의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음식 원형도 제주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다”며 “자꾸 제주다움이 육지와 비슷해지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섬살이다. 세월호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섬살이는 경험이다. 과학보다 앞선 것이 경험이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바다를, 섬을 안다고 나서는 육지 사람들의 오만에 대한 경종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