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팔자라고 했던가. 평생 파고(波高)에 힘들었지만 삶에 정성을 다한 지금의 내 모양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지극한 쓸쓸함의 늪 이 또한 욕심인가. 오랫동안 묶지 못한 시들을 손보면서 마음앓이가 깊었다. 우울했던 내 시여, 아팠던 지난날들이여 이젠 날아가렴. 가서는 돌아오지 마렴.”

해남 출신 김여옥 시인이 시집 ‘잘못 든 길도 길이다’를 펴냈다. 모두 60여 편의 시는 아픔의 기억과 정서를 환기한다. 이재복 평론가의 말처럼 “응어리진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그것을 신명나게 풀어내려는 그늘의 세계”다.

화자의 내면에 드리워진 응어리는 대체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나 사건이 원인인 경우다. 특히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오빠의 죽음은 오랫동안 의식을 지배한다. “갑자기 서늘한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온몸을 엄습”한 기억이 시간과 무관하게 출몰한다.

“슬픔도 진하게 달이면/ 아린 향 풍기는/ 꽃이 되지// 약초가 약이 되는 건/ 독이 있기 때문인 듯// 밤새 개 짖는 소리에/ 분분한 매화 이파리/ 깊은 잠 못 들것다// 저눔의 징상시런 안개 땜시/ 꽃바람 든 에미는/ 또 길 잃것다// 천지에/ 마음 둘 곳 없것다”(‘슬픔도 진하게 달이면’ 전문)

위의 시 ‘슬픔도 진하게 달이면’은 ‘슬픔’과 ‘독’도 ‘꽃’과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면의 고통을 삭여 은은한 향으로 발효해내는 미학을 정갈하면서도 잔잔하게 풀어낸다.

추천사를 쓴 김정란 시인(상지대 명예교수)은 “우리는 모두 최종적으로, 슬픔에 던져진 자들이라는 것. 그러나 그 슬픔에 대한 껴안음은 얼마나 건강하며 힘찬가”라고 평한다.

<책만드는 집·1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