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거절과 모진 박해, 한센병 환자를 위한 헌신, 공산당에 두 아들을 잃었음에도 원수를 양아들로 입양.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1902∼1950) 목사는 신행일치의 삶을 보여 준 참 신앙인이었다. 여수 애양원 기념관에는 ‘일만 원’이라는 액수와 함께 ‘귀한 아들을 그것도 둘씩이나 순교자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글귀가 적힌 헌금 봉투가 있다. 당시 손 목사의 사례금이 50원가량이었다 하니, 헌금에 담긴 그 거룩한 의미와 가치를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최근 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교단은 서울 명성교회 세습을 인정하는 수습안을 의결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등록 교인 10만 명에 연 예산만 100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교회의 ‘부자세습’(父子世襲)을 사실상 용인하는 결정이었다. 명성교회는 김삼환 원로목사가 2015년 2월 정년퇴임하자 2017년 3월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했다. 담임목사가 은퇴 후 2년이 지나 청빙했기에 세습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지만, 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이번 수습안은 2021년 1월 1일 이후 김하나 목사가 위임목사직에 취임할 수 있는 길을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세습 면죄부를 승인한 셈이 됐다.

교계 시민단체인 평화나무는 “이번 결정은 한국 교회의 심각한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세습 금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교단 헌법에도 불구하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세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업화된 대형 교회의 대물림은 결코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공의롭지도 않다. 농촌이나 오지 등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세습이라면 환영받을 만하겠지만.

종교는 어느 분야보다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내 집(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라고 책망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2000년 전 시간을 초월해, 자본화된 오늘의 교회를 향한 경고다. 답은 간단하다. 손양원 목사처럼 차원 높은 사랑을 물려줄 것인가, 교묘한 방법으로 기득권과 지위와 돈을 대물림하게 할 것인가.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