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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열 변호사] 범죄 피해자 보호에 관한 소고
2019년 09월 30일(월) 04:50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가 최근 MBC ‘실화 탐사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가해자는 인권으로 보호해 주고 피해자는 죄인이 돼 쫓기듯 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라며 큰 한숨을 지었다.

필자 역시 피해자 국선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범죄 피해자들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자주 듣고 있어 방송 내용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통적인 형사법 체계에서의 피해자는 가벌성 판단에서 소외돼 있을 뿐 아니라, 형사법 절차 내에서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형사 절차의 목표에 가려져 증거 방법 내지 증거 획득의 객체로 취급되어졌던 것이 현실이다.

비록 최근 몇 년 동안 성범죄, 아동 학대 범죄를 중심으로 범죄 피해자의 문제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행해졌고 그 일환으로 새로운 제도들과 법안이 신설되었지만, 형사법 체계에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형사법 절차에서 피해자 보호 제도를 살펴보면, 수사 절차에서는 고소권, 검사의 불기소 처분의 사유나 이유 등에 대한 통지 청구권,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 방법으로 항고와 재정 신청 그리고 헌법 소원 등을 들 수 있다.

공소 제기 후 공판 절차로 넘어오면, 피해자는 증인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증언 거부권을 갖는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판 절차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는바, 범죄 피해자의 진술권(형소법 제294조의 2), 피해자의 공판기록 열람·등사권(형소법 제294조의 4)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각종 특별법(특정 강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피해자 보호 절차를 두고 있다.

특히 법무부는 2012년부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성범죄 사건에 한해 피해자 국선 변호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범위를 아동 학대 사건에까지 확장한 바 있다. 필자는 피해자 국선 변호사로서 수사 단계에서부터 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의견서를 제출하며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피해자 조사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좀 더 폭넓은 대책이 필요함을 느끼곤 한다.

주요 선진국의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은 사법 당국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중심적 역할 수행이 특징적이며, 이로 인해 지역적 특성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또한 형사 사법 기관은 관련 민간 단체와 적극적인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다자간 협력 체계를 이루고 있다.

향후 피해자 보호의 입법 및 정책 방향은 주요 선진국의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을 모델로 삼아 좀 더 폭 넓게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우리 지역에서 이른바 ‘계부의 여중생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계부로부터 당한 피해 사실을 이 사건 발생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까지 하였으나 가해자와 떨어져 살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그 사건이 광주로 이관되는 등 수사가 늦춰지면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그 피해자인 여중생을 생각하면서 참 마음이 쓰라렸고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이렇게도 허술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필자는 범죄 피해자 보호에 관한 정책적 방향과 입법적 방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그 정책적 방향은 사법 당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사회 안전망을 더욱 확대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피해자 보호 정책의 수립·시행이 가능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 입법적 방향은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 보호 절차가 확대돼 왔으나,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체적 규정들은 대부분 특별법으로 산재해 있어 범죄 피해자들은 물론 법 집행기관 종사자들조차도 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개별 법률의 피해자 보호·지원 관련 규정을 통일적으로 규정해야 하고 특정 범죄에 국한한 피해자 국선 변호사 제도를 일반 범죄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우리 지역도 범죄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고 안전하며, 시민들이 맘 편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