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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대흥사 <17>북미르암 마애여래좌상
높이 4.2m…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자태에 압도되다
‘국보 308호’ 통일신라 말 조성 추정
용화전 해체보수과정서 실체 확인
유려한 굴곡 빼어난 조형미 신비로워
두륜산 북쪽 ‘북미르암’ 수려한 풍광
보물 ‘3층 석탑’ 세월의 유장함 안겨
2019년 09월 18일(수) 04:50
국보 제 308호인 해남 대흥사 북미르암 마애여래좌상은 정교함과 웅장함, 조형미를 갖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북미르암 삼층석탑




북미르암 용화전 내부에 걸린 탱화




북미르암 용화전 내부에 걸린 탱화








그 불상은 북미르암(북암)에 있었다. 국보 제308호 마애여래좌상.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에는 귀한 유물이 많은데 북미르암 마애여래좌상도 그 하나다. 높이가 4.2m에 달하는 불상은 웅장하면서도 정교하다.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사 보물 제48호였던 불상이 국보로 승격된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그동안 줄곧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형미는 사적 자료를 넘어 국가 차원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제기됐다. 당시 문화재청의 설명은 이렇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보호각인 용화전에 가려져 전모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용화전 해체보수 과정에서 그 웅장한 실체가 확인됨에 따라 불교미술사적인 가치가 인정돼 이번에 국보로 승격지정됐다.”

두륜산 정상 부근에 있기에 불상을 알현하기 위해선 산행의 수고를 피할 수 없다. 첫 대면에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사실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인데, 보는 이편의 마음이 움찔해진 탓이다. 세상의 저잣거리에서 이런저런 때가 묻은 터라,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다. 도업을 닦지 못한 사바의 중생은 절로 옷깃을 여민다.

그러나, 다시 보니 이편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마애여래좌상의 눈빛이 인자하다. 눈언저리에 광휘가 비친다. 두륜봉(頭輪峰) 정상 부근 자연 암반이 불상으로 화한 것이다. 처음 저 바위를 접했을 도공의 눈빛은 환희에 가득 찼겠다. 무명 무생의 암반에 들어앉은 부처의 상을 보았을 테니 말이다. 가부좌를 틀고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중생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찰나의 시간에 잡혔으리라.

혹여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접맥될 수도 있겠다. 플라톤에 따르면 예술은 ‘실재의 모사물인 현상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공의 뇌리에 섬광처럼 들어온 부처가 본질이라면 돌 속에 들어 있는 무수히 많은 부처는 모방의 산물이다. 그러나 도공은 사력을 다해 암반 속의 부처를 재현해내기 위해, 수 백 수 천의 시간을 정으로 쳤을 것이다.

저 불상에 1000년 전 도공의 따스운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유다. 부처의 뒤로 비치는 둥그런 광배(光背)는 이름 없는 도공의 염원이 시공을 초월해 현현된 것인지 모른다. 절묘한 부조기법과 선각기법이 이뤄낸 걸작인 것이다. 무엇이 본질이며 무엇이 모방인지 도시 구분할 수 없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말처럼, 본질과 모방은 경계 어디쯤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북암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을 되감아본다. 두륜봉 정상 부근까지 40여 분 남짓 걸렸다. 찰나이기도, 한때이기도, 순간이기도 한 시간이다. 사실 북암은 초행길이었다. 혼자 찾은 대흥사에서 무작정 북암까지 오르리라 마음먹었다. 사실은 기사 마감이 코앞이기도 했다. 호젓하게 산행을 한다는 이유보다, 스스로를 유폐하고 싶었다. 잠시 숲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산 아래와 달리 중턱쯤부터는 짙은 운무가 산허리를 감고 있었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한 신선의 땅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두륜산은 축축이 젖어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흙내음과 초록내음이 진동해 절로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의 숨소리가 잡힐 듯 가깝게 들려왔다. 산허리에 걸린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낯선 암자를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로 신비로웠다.

‘그대는 어인 일로 산에 들었는가. 무슨 연유로 외로운 산길을 오르는가. 아니 산행을 하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 그러나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산행을 하지 말게. 단지 그대가 지고 있는 무거운 것을 내려놓게나. 산을 오르는 것은 세상의 헛된 짐들을 내려놓는 것이라네. 근심, 걱정, 욕심, 불안 모두 바람속에 부려놓게나. 할 수 있거든 희로애락애욕정 칠정의 모든 것도 잠시만이라도 잊게나.’

그렇게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 운무에 가린 희뿌연 산이 짐승처럼 꿈틀거린다. 인적이 드문 산에서 느끼는 격절감은 오히려 편안한 쉼으로 다가온다. 번잡한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안식’이다.

암자로 향하는 길은 그리 멀지도 험하지도 않다. 두륜산 북쪽에 자리한 북미르암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산의 경치를 둘러보며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 묻는다. 생각이 생각을 연하여 일어난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을 끊기는 쉽지 않다. 마애여래좌상을 뵈면 물으리라.

부처님은 열반 전 제자들에게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남겼다. 이른바 ‘열반송’(涅槃誦)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자등명 법등명’을 실현하며 사는 것은 아닐지.

“아난다여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혹여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아라. 그대들은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라. 부디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아라.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거늘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그렇게 40여분을 홀로 산행을 했다. 북미르암에 도달하자 햇볕이 구름 사이로 비쳐든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용화전(龍華殿) 안쪽에 마애여래좌상이 연화좌에 앉아 있다. 상체를 덮은 천의 자락이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흘러 가슴 앞에서 묶여져 있다. 두상 뒤로 비치는 광배가 서늘하면서도 따숩다.

대흥사 월우스님은 “여래좌상은 본존불의 높이만 4.2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다. 조각 방식도 유려해 마애불상 가운데서도 조형미가 특출하다”며 “전체적인 신체의 굴곡이 유려한데다 대좌의 연꽃도 생동감이 넘쳐 정교함과 신비로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인근의 북미르암 삼층석탑(보물 301호)도 귀한 유물이다. 시간의 더께가 틈틈이 박힌 탑에서 지나온 세월의 유장함을 본다. 석탑을 빙 둘러 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언제인가 싶게 사르르 구름이 걷히고, 하늘은 맑다. 두륜산 아래 세상은 여일하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