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드높여 과시할 만한 휘황한 깃발이 아니었다. 쫓기고 쫓겨나고 뭍에서 뭍에서 이리저리 피난하며 가까스로 지켜 온 찢겨진 깃발이었다. 누더기였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내릴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투쟁의 상징이었다.” 김별아의 소설 ‘백범, 거대한 슬픔’은 위대한 인간이 운명처럼 맞서야 했던 역사적 행간에 숨겨진 기록이다. 임시정부 수석인 백범이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 지나온 세월을 회상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생과 사의 틈바구니에서 여덟 개의 이름을 바꿔 가며 살아야 했던 백범. 작가는 아내의 죽음, 수감 생활과 도피 그리고 이봉창·윤봉길과의 동지애 등 운명처럼 맞서야 했던 고독과 슬픔에 초점을 맞춘다. 거기에는 ‘나라를 잃고 상갓집 개처럼 떠돌아야 했던 오래전 우리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현행 헌법을 부정하는 일부 야당 의원들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낸다.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나경원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194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했으며 5·18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이종명 의원은 “광복절이 친일 청산, 과거사 청산에만 매진하는 과거 지향적인 행사로 전락될 수 있는 위기에 있는 듯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지만 명백한 사실마저 부정하는 이들의 언동은 ‘친일파에 역사적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올해는 백범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 김별아 작가가 김구를 모티브로 소설을 쓴 것은 불공정과 불의가 판치는 오늘의 현실을 더는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꼬리를 물고 도는 뱀과 같은 역사를 오늘 다시 쓰고 내일 또 새롭게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고 묻지 않으면 그 어리석은 반복과 순환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서야 탈출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 역사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길을 찾을 수 없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